[객석] 응답하라, 2014

입력 2014-11-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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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유 홍보대행사 트레이 사원

“1(카톡메시지 표시) 없어졌는데 왜 답을 안해? 내 말 씹는거야?”

응답에 민감한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도 실시간으로 응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 멋진 세상!’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쥐고, 온라인 SNS 창에 새로 올라온 댓글을 읽는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빠르고 정확하게, 스피드는 생명. 만일 울려오는 휴대폰 진동에 조금이라도 둔감했다간 애인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다. 그리고 그만큼 급하다. 5번 이상 울리는 통화 연결음을, 카톡을 보내놓고 기다리는 10분의 시간을 참지 못한다. 우린 매우 바쁘고, 고맙게도 IT기기는 그에 맞춰 발전했다.

애석하지만 예전에도 사람들은 잘 살았다. 휴대폰이 없어도 정해진 곳, 정해진 시간에 만나 연애를 즐겼고, 메신저가 없어도 친구들과 만나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었다. 아빠의 퇴근한다는 전화에 맞춰 지하철 역사 앞으로 나갔고, 전철이 한대 한대 도착할 때마다 두근거리며 아빠의 모습을 찾았던 때. 우리의 응답은 지금보다 훨씬 더 띄엄띄엄 일어났지만, 기다림의 답답함 대신 설렘이 자리했다.

21세기의 우리는 쉴 새 없이 응답한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응답 속에, ‘기다림’이 주는 신비로운 감정 따윈 낄 틈이 없다. 그는 3분 후에 도착한다고, 그녀는 15분쯤 늦는단다. 언제든 응답이 가능하니 늦는 친구가 있어도 주구장창 그를 기다릴 이유는 없다. 그녀 또한 걱정 없이 늦는다. 그렇게 모인 우리는, 다시 또, 다른 어딘가에 쉴 새 없이 응답한다.

우리는 그 세상을 향유하는 아주 세련된 신인류니깐. 오프라인에서 어렵사리 만난 눈앞의 서로에겐 진중하게 응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서, 애먼 곳에 있는 그와 그녀에게 응답하느라 눈과 손이 쉬질 않는다. 짜증이 치밀기 시작한다. “야! 그거 집어 던지기 전에, 응답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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