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비슷한 시기 한 일간지에 발표된 기사에 따르면, 다국적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가 전 세계 36개국 3000여개 기업의 고위 경영진 2만8000여 명을 대상으로 여성임원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2%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파키스탄의 6.5%, 칠레의 6.8%, 인도의 7.1%보다 낮은 수준임은 물론, 아시아권의 태국(26.5%), 말레이시아(26.2%), 싱가포르(25.1%)만 해도 임원 4명 중 1명이 여성이란 사실과 비교해서도 지나치게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OECD 국가 중 세계 1위인 현실을 고려할 때 도무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 아니겠는지.
기실 독종만이 살아남는 구조의 문제는 여성성의 특성이나 한계가 원인이 아니라, 권력 불평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그 근거로는 남성 중심 조직에서 여성이 보이는 전형적 행동양식은 백인 중심 조직에서 흑인이 보이는 다양한 행태와 매우 유사함이 지목되고 있다. 결국 흑인이 백인 조직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백인보다 더욱 백인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탁월한 성과를 내야 하듯, 여성이 남성 조직에서 역량과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선 남성보다 더욱 남성다운 정체성을 시연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2인자로서 최근 ‘린인(Lean In)’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세릴 샌드버그조차도, 남성은 미래의 잠재력(potential)을 기반으로 발탁되지만, 여성은 과거의 업적(performance)을 토대로 기회가 주어진다는 미묘한 성차별적 관행을 지적한 바 있다.
분명한 사실은 여성임원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더 이상 독종만이 살아남는 현상은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비례대표 할당제에 힘입어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7%를 넘어서게 되자, 여성 정치가의 리더십 유형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함을 보여주었고, 굳이 독종이 아니어도 여성으로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를 수 있음 또한 보여주었다.
젠더 조직론의 주창자인 로자베스 캔터는 여성이나 흑인이 소수집단으로서의 불이익을 벗어날 수 있는 티핑 포인트로 ‘마의 19%론’을 주장하고 있다. 곧 100명 중 19명이 서로 단합하면 소수집단을 향한 부정적 편견 및 고정관념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하나 더 첨언하자면 기업 내 여성 고위직 진출의 걸림돌로서 흔히들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지목하고 있지만, 정작 여성들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른 이야기가 들려옴을 주목할 일이다. 차장이나 부장에 이르면 당사자들 표현으로는 육아에 ‘굳은 살이 박힌다’는 것이다. 더 더욱 친정, 시댁 가리지 않고 부모님 도움 없이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불가능한 만큼 이제 와서 양육이 걸림돌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여성 중간관리자들의 고백은 “우리에게도 비전을 주십시오”다. 여성들도 조직 내 소모품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성과를 내면 승진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 임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달라는 것이다.
국내 상장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무는 동안 국내 글로벌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13~15%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다투어 글로벌 스탠더드를 접목해가고 있는 이때, 소수집단에 대한 배려를 인사고과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글로벌 기업의 조직문화를 적극 벤치마킹해봄은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