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은 은퇴연령 늦어지는 부작용
독일 연금 보전 지출 1100억유로 달해

연금에 대한 분노는 프랑스에서 특히 거세게 일었다. 최근 몇 주에 걸쳐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폭동과 노상강도로까지 번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경찰을 동원한 진압에 나서면서 폭력적인 분위기는 다소 사그라들었지만, 연금 불안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대체로 62세부터 과거 급여를 기준으로 산정한 공적연금을 받아 왔다. 은퇴 뒤 여행과 취미, 여가를 즐기는 삶도 사회적 권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고령화와 재정 악화로 연금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커지면서 정부가 은퇴 연령을 높이는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수급 연령 조정 등을 둘러싼 논의는 현역 세대와 은퇴 세대 간 부담 갈등으로 번지고 있으며 최근 시위의 배경 중 하나가 됐다.
다른 국가들도 연금 문제를 겪고 있다. 오랫동안 사회보장 기본급 외 추가 소득을 얻기 위해 스스로 은퇴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야 했던 미국 노동자들과 달리 유럽 노동자들은 국가가 보장하는 포괄적인 평생 소득을 약속받아 왔다. 이런 탓에 인플레이션과 부채, 경기침체 등의 위기가 올 때마다 정부를 향한 비난도 거세졌다.
통상 유럽 각국은 크게 세 가지 연금 모델을 따른다. 우선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순수 소득에 비례해 지원하는 모델이 있다. 국가 연금이 이전 소득의 74~82%를 대신한다. 35조달러가 넘는 민간 퇴직 자산이 주식과 채권에 투자되어 있는 미국과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근로자의 연금 보험료가 퇴직자의 주머니로 직접 들어간다. 이러한 연금 보험료는 프랑스에서 총 임금의 27%, 이탈리아에서 33%를 초과합니다.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연금 지출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워 재정적 경직성이 단점으로 꼽힌다. 과거 유로존 재정위기 당시 차입 비용이 급증하자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연금 삭감을 단행했고 그 결과 대규모 시위나 총파업이 곳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두 번째 모델은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이 채택한 혼합 모델로, 기본 국가 연금 제도와 직장 연금제도가 결합했다.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제이콥 키르케고르 비상주 선임 연구원은 “이 모델이 안정적인 소득 지원과 높은 퇴직 연금, 국가 자산 축적에 도움이 되는 대규모 위험 자본을 제공한다”면서도 “더 긴 노동 기간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덴마크에선 법적으로 은퇴 연령이 기대 수명과 연동돼 있으며 젊은 세대 은퇴 연령은 2070년께 74세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세 번째 모델은 첫 번째 모델과 두 번째 모델의 중간에 있는 제도로, 독일과 영국이 채택했다. 영국은 낮은 수준의 정액 공적 연금을 지급하는 동시에 노동자가 민간 연금에 자동 가입하는 제도를 운용 중이다. 독일 역시 현역 노동자가 납부한 보험료로 은퇴자의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방식 연금제도를 운용하지만 연금 지급액은 인접국인 프랑스보다 상당히 낮고 월 지급액에도 상한이 걸려 있다.
다만 이 역시 해답은 아니다. 독일은 연금 지급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고 법정 은퇴 연령도 67세로 설정돼 있지만 여전히 막대한 재정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연간 1100억 유로(약 165조원)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 이는 연방정부 예산에서 단일 지출 항목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WSJ는 “연금제도의 구조를 전환하기는 쉽지 않다”며 “사전에 연금 재원을 적립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자본을 축적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특정 세대는 은퇴한 세대의 연금과 자신의 노후 연금을 위해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유럽 각국이 직면한 문제를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