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파고들다’ 등 AI 표현으로 인식된 단어 늘어
인간ㆍ기계 문체 수렴⋯글만으로 구별 어려워져

#미국 작가 미아 밸러드는 공포소설 ‘샤이 걸(Shy Girl)’이 AI로 작성됐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 3월 세계 5대 출판사 중 하나인 아셰트 북그룹으로부터 출간이 취소되는 일을 겪었다. AI 탐지 서비스 팽그램이 해당 작품의 AI 작성 비율을 78.3%로 판정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밸러드는 AI 사용을 부인하며 편집자가 자신도 모르게 AI를 활용했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발표한 작품에서도 AI 사용 의혹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인종차별적 비난과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그는 8월 자비 출판한 신작 ‘아메리칸 틴 프린세스’에서는 AI가 작성한 글로 오해받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시적인 표현을 줄이고 문체를 단순화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첫 장 역시 팽그램에서 AI 작성 비율 37%라는 판정을 받았다.
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밸러드 작가가 겪은 것처럼 실제 인간이 쓴 글도 AI를 이용했다는 오해를 받는 일이 잦아지자 인간이 쓴 글을 더욱 ‘인간답게’ 보이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작가들은 병렬 구조와 수사적 반복, 세 가지 요소를 나열하는 ‘3의 법칙’ 등 AI가 작성한 글의 특징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 기법을 기피하고 있다. AI가 매끄럽고 정제된 문장을 구사하자 작가들은 오히려 의도적으로 오탈자를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80만 편 이상의 팟캐스트 에피소드를 분석한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발달연구소 연구진에 따르면 챗GPT 출시 이후 인간의 언어에서 ‘delve(깊이 파고들다)’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급증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단어를 대규모언어모델(LLM) 특유의 표현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사용 빈도는 챗GPT 출시 이전 수준보다도 낮아졌다.
블룸버그는 “지금까지 ‘인간화하다(humanize)’라는 동사는 주로 AI가 생성한 글을 인간이 쓴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앱이나 챗봇 플러그인의 기능을 설명하는 데 사용돼 왔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직접 쓴 글까지 ‘인간화’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글을 쓰는 데 AI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AI가 언어에 얼마나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기계의 언어적 특성이 뒤섞인 ‘혼합형 언어’도 형성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AI 특유의 표현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문체를 바꾸는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챗봇으로 생성한 글을 직접 수정하거나 별도의 서비스를 활용해 인간이 쓴 것처럼 다듬는 작가들이 있다.
AI의 문체가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인간과 AI가 작성한 글을 언어적 특징만으로 구별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조사기관 그래파이트에 따르면 AI가 작성한 글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혔던 ‘긴 대시(em dash)’는 최신 AI 모델에서 오히려 인간 작가들보다 적게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픈AI의 GPT-6 아스트라는 긴 대시를 인간의 8분의 1 수준으로 사용하며, 구글의 제미나이 3.1 프로는 이 기호의 사용을 거의 완전히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간의 고유한 언어적 특성으로 여겨지는 ‘개인어(idiolect)’의 개념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개인어는 개인마다 고유하게 나타나는 어휘와 문법, 표현 습관 등을 뜻한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개인어를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으로 보는 반면, AI 모델마다 서로 다른 언어적 패턴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기계에도 이와 유사한 특성이 존재하는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포르투갈 포르투대의 법언어학자인 후이 소자실바 교수는 작가들이 오랫동안 그래머리(Grammarly) 같은 문법 교정 도구를 사용해 문체를 더욱 균일하게 다듬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글이 기계가 생성한 글과 점점 비슷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LLM은 이러한 수렴 현상을 한층 가속화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소자실바 교수는 이어 “AI 탐지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이 챗봇이 생성한 글을 단순히 복사해 붙여넣기보다 인간과 기계의 언어를 더욱 정교하게 결합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결국 글에는 인간이 쓴 흔적과 기계가 쓴 흔적이 모두 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