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세 승객 A 씨는 9월 시내버스에 탑승한 뒤 교통카드를 찍던 중 버스가 갑자기 출발하면서 넘어졌다. A 씨는 운전석 뒤편 의자에 부딪힌 뒤 바닥에 쓰러졌고, 척추뼈가 골절돼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A 씨 주장 등에 따르면 A 씨는 사고 직후 운전 기사에게 심한 통증을 호소했으나, 운전기사는 약 30분 동안 버스를 계속 운행했다. 운전기사는 종점에 도착한 뒤에야 A 씨를 업어 정류장 의자에 앉혀 놓았으며, 119 신고 등 별도의 구호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찰은 기사를 뺑소니(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 혐의로 입건했다.
도로교통법 제54조는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자가 즉시 정차하여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자신의 인적사항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3은 업무상과실 또는 중과실로 사람을 다치게 한 운전자가 필요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른바 ‘뺑소니’가 성립하려면 먼저 운전자의 과실로 피해자가 다쳤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하고, 운전자가 피해자의 부상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필요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채 도주했어야 한다.
이 사건의 첫 번째 쟁점은 버스기사에게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다. 버스기사는 승객의 승차 상태를 확인하고, 급출발이나 급제동 등으로 승객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할 의무가 있다. 다만 승객이 넘어졌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운전기사의 과실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승객의 위치와 움직임, 버스의 출발 과정, 운전기사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주의의무 위반과 승객의 부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과실치상죄가 성립한다.
대법원은 정류장에서 버스가 통상적인 방식으로 출발하던 중 뒤늦게 좌석에서 일어나 이동하던 승객이 넘어진 사건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전기사에게 모든 승객의 움직임을 일일이 확인할 의무까지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도 운전기사가 승객의 탑승 상태를 제대로 확인했는지, 출발 과정에서 급가속이 있었는지, 승객이 넘어질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는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운전기사의 과실이 인정돼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운전기사의 과실로 승객이 다쳤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두 번째 쟁점은 사고 이후 운전기사가 필요한 구호조치를 이행했는지 여부다. 도주치상죄는 운전자가 사고로 피해자가 다쳤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도 필요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채 현장을 이탈한 경우에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운전기사가 피해자를 정류장 의자에 앉혀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구호의무를 다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반대로 사고 현장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도주치상죄가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사고 당시 피해자의 상태와 구호조치의 필요성, 운전기사가 실제로 취한 조치, 현장을 떠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은 구호조치의 필요성을 사고 경위와 피해자의 나이, 상해의 정도, 사고 이후의 정황 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피해자가 전치 2주의 비교적 가벼운 상해를 입은 사건에서도 부상이 경미하다는 이유만으로 구호조치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대법원은 운전자가 피해자에게 신분증을 제공했더라도 필요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났다면 도주치상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피해자의 부상이 가볍다거나 운전자의 신원이 확인된다는 사정만으로 구호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에 대해 운전기사는 버스 운행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종점에 도착한 뒤 피해자를 직접 업어 정류장 의자에 앉혀 주었으므로 최소한의 구호조치를 이행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사고를 은폐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 없이 나름대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 도주의 고의가 없었다고 항변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앞서 판례 기준을 고려할 때 운전기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피해자는 79세의 고령자로 척추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고, 사고 직후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전치 2주의 상해에서도 구호의 필요성을 쉽게 부정할 수 없다면, 이 정도의 상해에서는 필요성이 더욱 분명하다.
또 위와 같은 상황에서 운전기사가 약 30분 동안 운행을 계속했고, 그 시간 동안 피해자가 스스로 움직여 버스를 내리거나 병원에 가기는 어려워보인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단순히 정류장 의자에 앉혀 주는 것만으로 구호의무를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적어도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119에 신고하거나 병원 이송을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허윤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교통사고 후 구호조치 의무는 버스 내부에서 발생한 사고에도 적용된다”며 “특히 고령의 승객이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데도 적절한 구호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다면 도주치상죄가 문제될 수 있다”고 했다.
[도움]
허윤 변호사는 법무법인 동인 수사대응팀·압수수색대응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방위사업청 옴부즈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서울특별시의회 입법법률고문, 언론중재위원회 자문변호사, 기획재정부 사무처 고문변호사 등으로 활동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