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 역시 시간을 들여 육성해야 하는 신입보다, AI를 도구 삼아 당장 실무를 이끌 수 있는 검증된 경력직 채용에만 집중하고 있다. 산업 현장 일각에서 "신입 여러 명을 뽑아 가르치느니 경력직에 고성능 AI 구독료를 더 주는 게 낫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씁쓸한 현실은 경제 지표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AI 확산 여파로 기업들이 즉시 투입 가능한 경력직을 선호하면서 졸업 청년 1000명당 경력직 입직자가 2014~2019년 평균 102명에서 최근(2023~2026년) 121명으로 증가할 때 첫 직장 입직자(신입)는 48명에서 45명으로 감소했다.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이 불안정한 2차 노동시장으로 내몰리며 청년층 고용의 질 지수 역시 같은 기간 101.1에서 94.7까지 추락했다.
여기에 하향 취업한 청년이 다시 1차 시장으로 올라서는 이동 사다리마저 8%대에서 5%대로 주저앉았다. 청년들이 초기 숙련 기회를 놓쳐 영구적인 고용 부진에 빠지는 '이력 현상(일시적 충격이 장기 부진으로 굳어지는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개별 구직자의 역량 부족이나 각자도생의 문제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기업이 단기 비용 절감과 효율성만을 앞세워 신규 채용을 줄이고 AI와 경력직에만 의존할 경우 장기적으로 산업 현장을 이끌 핵심 인재 공급망은 단절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신입 채용을 극단적으로 줄였다가 심각한 숙련 인력 공백과 국가 생산성 저하를 겪은 일본의 '취업 빙하기'가 대표적인 선례다.
신입 채용은 단순한 일자리 제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인적 자본을 축적하고 전수하는 필수적인 관문이다. 개별 기업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 전체에는 인재 양성 실패라는 구조적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와 산업계는 AI 도입 가속화에 발맞춰 청년층의 노동시장 초기 진입을 유도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술 혁신의 속도에 가려진 미래 세대의 성장 사다리를 복원하는 일은 국가 성장 잠재력 유지와 노동시장 지속 가능성을 위한 구조적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