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산업의 성장에 힘입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대규모 설비투자에 따른 수익성 확보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패키징 등 차세대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생산능력 확대에 따른 공급 부담과 미중 기술 패권 경쟁도 반도체 기업의 투자 전략을 좌우할 전망이다.
삼정KPMG는 28일 발간한 'AI 시대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6대 이슈'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주요 변화와 국내 기업의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89.9% 성장한 1조511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반도체 수출 역시 고부가 메모리 수요 확대에 힘입어 지난해 1734억달러로 전년 대비 22.2%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AI 데이터센터 확충에 따른 서버용 메모리 출하 확대 등으로 1924억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62.6% 늘었다.
다만, 반도체 시장의 외형 성장과 개별 기업의 수익성 개선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주요 기업이 동시에 생산설비를 확충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공급 경쟁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생산설비 구축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장치산업이라는 점에서 투자 시점과 가동률 관리가 중요하다. 수요 증가를 예상해 선제적으로 설비를 확대하더라도 실제 고객 주문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감가상각비와 고정비 부담이 수익성을 압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향후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한 생산능력 확대보다 고부가 제품 비중과 안정적인 고객 수요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정KPMG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핵심 변수로 △AI 반도체 △전력 반도체 △파운드리 △미국 내 생산거점 확대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 △반도체 투자 및 인수·합병(M&A) 등 6가지를 선정했다. AI 반도체 분야에서는 생성형 AI와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성능을 높이면서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는 3차원(3D) 적층과 하이브리드 본딩 등 첨단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추세다.
이같은 변화는 반도체 기업 간 경쟁 구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개별 반도체의 성능과 생산 원가가 주요 경쟁 요소였다면, 최근에는 메모리와 프로세서, 패키징 기술을 통합해 고객에게 최적화된 제품을 공급하는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HBM 시장에서도 단순한 생산량 확대보다 차세대 제품의 수율과 고객사 인증, 안정적인 공급 능력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질수록 기존 생산설비의 활용 기간이 짧아질 가능성도 있어 신규 투자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전력 반도체 시장도 주목할 분야로 꼽혔다.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확대되면서 전력 효율을 높이는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온·고전압 환경에서 효율이 높은 실리콘카바이드(SiC)와 질화갈륨(GaN) 기반 화합물 반도체가 차세대 성장 분야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도 국내 반도체 기업이 고려해야 할 변수다. 미국은 세제 혜택과 통상 정책을 활용해 자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현지 투자 범위도 생산시설에서 패키징과 테스트, 연구개발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 역시 주요 변수로 지목됐다. 중국은 정부 지원과 자국산 제품 사용 확대를 바탕으로 반도체 설계와 제조, 장비 분야의 기술 자립을 추진하고 있다. 화웨이의 AI 반도체 개발과 CXMT의 메모리 공급 확대 등으로 일부 분야에서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기업의 생산능력 확대는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범용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공급이 증가할 경우 가격 경쟁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고성능 메모리와 첨단 공정 등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전략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의 투자 확대는 전략적 M&A의 중요성도 높이고 있다. 첨단 공정과 패키징 기술이 복잡해지면서 기업이 자체 연구개발만으로 모든 기술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반도체 설계와 시뮬레이션, 고속 연결 기술 등을 확보하기 위해 인수와 지분투자를 활용하고 있다. 대규모 생산설비를 직접 구축하는 방식과 달리 M&A는 특정 기술과 인력을 비교적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기술기업 인수 역시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기술의 상용화 시점과 고객사 확보 여부에 따라 기업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단순한 기술 선점보다는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와 현금흐름 창출 능력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삼정KPMG는 국내 기업들이 실제 수요와 가동률, 현금흐름을 고려해 투자 규모와 시점을 조정하는 한편 공동개발과 지분투자, M&A를 통해 핵심 기술과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인혜 삼정KPMG 테크산업리더 부대표는 "AI 시대에는 고성능·저전력 반도체를 구현하기 위해 메모리·프로세서·첨단 패키징을 연계한 통합 솔루션 개발과 기업 간 공동개발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며 "국내 기업은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고객 수요와 투자 회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해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전략적 투자와 M&A를 통해 차세대 기술과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