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소득·자산 기준 상향 검토
전문가 "내 집 마련 지원 강화해야"

서울시가 신혼부부에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 '미리내집'의 평균 청약 경쟁률이 46대 1을 넘었지만, 강남권 일부 단지에서는 모집 인원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용면적 59㎡의 보증금이 11억원을 넘는 등 높은 주거비가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시는 소득·자산 기준을 완화하고 입주자의 목돈 마련을 돕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21일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의 제8차 장기전세주택Ⅱ(미리내집) 청약 결과에 따르면 강남구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59㎡는 예비입주자 5명 모집에 2명만 신청했다. 보증금은 11억7000만원이다. 서초구 래미안퍼스티지 59㎡도 보증금이 10억4520만원으로, 8명 모집에 9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1.13대 1에 그쳤다.
전체 청약 경쟁률과는 차이가 크다. 지난달 진행된 제8차 미리내집 청약에는 신규공급과 예비입주자 모집을 합쳐 496가구 모집에 2만2883명이 신청했다. 평균 경쟁률은 46.13대 1이었다. 구로구 두산위브더프레스티지 59㎡는 2가구 모집에 816명이 몰려 408대 1을 기록했다. 이곳의 보증금은 4억4226만원으로, 래미안대치팰리스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리내집은 신혼부부에게 주변 전세 시세의 80% 이하 보증금으로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최장 10년간 거주할 수 있고, 모집공고 이후 자녀를 낳으면 거주 기간이 20년까지 늘어난다. 신혼부부가 안정적으로 살면서 내 집 마련을 준비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강남권의 높은 전셋값이다. 시세보다 20% 이상 저렴하게 공급하더라도 보증금 자체가 워낙 비싸 신혼부부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모집에서 보증금이 10억원을 넘는 주택은 7개 단지, 89가구로 전체의 17.9%를 차지했다. 래미안퍼스티지 84㎡는 보증금이 13억8840만원으로 가장 비쌌다. 반포자이 84㎡는 12억6360만원, 청담자이 82㎡는 11억9340만원이었다. 청담르엘과 래미안대치팰리스는 59㎡도 각각 11억7000만원에 달했다.
서울시는 보증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올해 4월부터 분할납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입주 때까지 보증금의 70%만 내고 나머지 30%는 퇴거할 때까지 납부를 미룰 수 있다. 대신 미룬 금액에 대해서는 매달 이자를 내야 한다.
청담르엘 59㎡에 이 제도를 적용하면 처음 내야 할 보증금은 11억7000만원에서 8억1900만원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미룬 보증금 3억5100만원에 올해 적용 금리인 연 2.73%를 적용하면 매달 약 80만원의 이자가 발생한다. 8억원이 넘는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까지 받으면 이자 부담은 더 커진다.
서울시는 보증금이 비싸더라도 강남권 임대주택 공급은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남 등 집값이 높은 지역을 공급 대상에서 제외하면 해당 지역에서 공공임대주택을 이용할 기회를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높은 보증금이 신혼부부의 입주 문턱으로 작용하는 만큼 미리내집이 실질적인 내 집 마련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8일 서울시가 개최한 '장기전세에서 내 집으로, 서울의 주거사다리 희망토크'에서 입주민들이 건의한 사항을 중심으로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소득·자산 기준을 높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지난달 토론회에서는 입주자가 저축으로 자산을 모아도 재계약 때 소득·자산 기준을 초과하면 입주 자격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리내집은 거주 기간에 자산을 축적해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취지"라며 "자산이 늘었다고 바로 퇴거하게 하면 자산을 형성할 기회가 사라지는 만큼 근로자 소득 수준과 경제 성장 등을 고려해 소득·자산 기준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족 수에 따라 주택 면적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재는 입주 후 자녀가 태어나거나 부모를 모시게 돼 가족이 늘더라도 더 넓은 집으로 옮기려면 다시 청약해야 한다. 서울시는 이런 불편을 줄이기 위해 입주 자격을 유지하면서 넓은 평형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입주자의 목돈 마련을 직접 돕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서울시는 청년이 매달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같은 금액을 추가로 적립해 주는 '희망두배 청년통장' 등을 참고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임대료를 조정하거나 저축과 연계해 입주자의 자산 형성을 돕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대주택에 사는 동안 돈을 모으는 것뿐 아니라 퇴거 후 실제 집을 살 때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장기전세주택이 단순히 저렴한 집을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준형 명지대 교수는 "지금까지 장기전세주택은 임대료를 받지 않는 주택 정책이라는 개념이 강했다"며 "앞으로는 입주자가 민간 주택시장으로 나갈 때 대출이나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임대주택을 분양 전환하면 공공임대 물량이 줄어드는 만큼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 장기전세주택에서 내 집 마련으로 넘어가는 가구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