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력·지배구조 등 구조적 한계에 M&A 저조
M&A 활성화로 투자 회수 다변화…선순환 기대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에서 인수합병(M&A)이 신약 파이프라인과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체 연구개발(R&D)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망 기술과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해 개발 위험을 줄이고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기술수출과 공동개발이 활발하지만 M&A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국내 기업 간 거래뿐 아니라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을 인수하거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기업의 자금력과 지배구조, 투자금 회수 방식 등이 M&A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술수출과 함께 M&A도 주요 성장 전략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에서 M&A는 활발하다. 한국바이오협회가 발간한 ‘글로벌 바이오제약 산업 주요거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바이오제약 산업의 M&A는 119건, 거래금액은 968억1000만달러(약 129조원)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존슨앤드존슨이 인트라셀룰러 테라퓨틱스를 146억달러(당시 약 21조원)에 인수한 거래가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바이오 기업의 자금 조달 환경과 대형 제약사의 성장 동력 확보 수요가 맞물리면서 M&A가 확대됐다. 최근 2~3년간 기업공개(IPO) 시장이 위축되고 바이오 기업의 가치가 낮아진 가운데 특허 만료를 앞둔 대형 제약사들이 새로운 파이프라인 확보에 나선 영향이다.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M&A에 적극적인 이유로 신약개발의 높은 실패 위험과 비용 부담을 꼽았다. 그는 “신약개발은 초기부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지만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다”며 “대형 제약사도 모든 파이프라인을 자체 개발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일정 수준 검증된 기술이나 후보물질을 보유한 바이오텍을 인수하면 초기 개발 위험을 줄이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전체를 인수하는 데는 지속적인 신약개발 역량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는 “특정 기술뿐 아니라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낼 역량이 있다고 판단하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며 “특히 플랫폼 기술은 특허 관계가 복잡해 라이선스 계약보다 회사를 인수해 관련 자산과 노하우를 함께 확보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M&A 시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대규모 기업 인수 사례도 제한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M&A는 14건, 거래금액은 약 1조2000억원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통계와 조사 대상 및 집계 기준에 차이가 있지만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업 인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국내 M&A 사례로는 TKG그룹-에이프릴바이오, 오리온-리가켐바이오, OCI-부광약품, CJ제일제당-천랩 인수 등이 있다.
국내 M&A는 거래금액에서도 소규모 인수가 중심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제약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성장 동력 M&A의 국내외 동향분석’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11월까지 국내 제약·바이오 M&A는 총 48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거래금액이 확인된 43건 중 34건(79.1%)이 1000억원 미만이었다.
주목할 점은 M&A는 부진하지만 기술 경쟁력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술수출 규모는 지난해 27조6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도 9월 2일까지 21조7000억원에 달했다. 글로벌 제약사와 잇따라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기업 인수로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 국내 M&A 역시 기존 제약사의 신약개발 역량 강화보다는 대기업이나 이종산업 기업의 바이오 시장 진출, 사업 다각화에 초점을 맞춘 사례가 많다.
국내 M&A가 활발하지 않은 배경으로는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권에 대한 인식 차이가 꼽힌다. 미국에서는 바이오텍 설립 초기부터 M&A를 투자금 회수 수단으로 고려하고 외부 투자 유치 과정에서 투자자의 영향력이 커지는 구조가 비교적 일반적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창업자가 지분과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해 기업 매각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바이오텍 설립 초기부터 M&A를 통한 투자금 회수를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아 창업자가 빠르게 엑시트하는 사례도 많고 기업 매각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며 “반면 국내에서는 창업자가 회사를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고 지분과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성향도 있어 M&A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인수 주체의 자금력과 기업가치에 대한 눈높이 차이도 걸림돌이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와 비교하면 국내 제약사는 매출과 자금 동원 능력이 제한적이어서 대규모 인수에 나서기 쉽지 않다. 대기업 역시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인수에 신중한 편이다. 여기에 매도자와 매수자가 평가하는 기업가치에 차이가 발생하면 거래 성사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해외 기업의 국내 바이오기업 인수에도 제약이 따른다.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 차이뿐 아니라 국가 간 거리와 세금 문제 등이 거래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다. 해외 제약사 입장에서는 기업 전체를 인수해 운영하기보다 필요한 기술만 도입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한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는 “해외 기업의 국내 바이오기업 인수는 기업가치에 대한 눈높이 차이뿐 아니라 세금이나 물리적 거리 등의 문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기업을 직접 인수하기보다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는 방식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M&A 활성화는 기업 성장뿐 아니라 바이오 벤처 투자 생태계에도 중요하다. 기업은 기술과 연구개발 역량을 결합해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자는 IPO 외에 투자금 회수 경로를 확보할 수 있다. 특히 IPO 의존도가 높은 국내에서 M&A가 활성화되면 회수된 자금이 유망 바이오 기업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VC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M&A 사례가 많지 않고 실제 성사 가능성도 작아 초기 투자 단계부터 기업 매각을 주요 투자금 회수 시나리오로 고려하는 경우가 드물어 대부분 IPO를 중심으로 투자금 회수를 계획한다”며 “국내에도 다양한 투자금 회수 경로가 있었다면 바이오 투자 시장이 지금보다 활성화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M&A 시장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인수할 만한 기술과 신약 후보물질을 갖춘 기업이 충분히 성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후기 임상 단계의 후보물질이나 차세대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이 주요 인수 대상으로 꼽힌다. 반면 국내에서는 이러한 자산을 보유한 기업이 상대적으로 적어 M&A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기술가치 평가와 경영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연한 거래 구조도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기업 간 합병 과정에서 각자가 보유한 기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거나 경영권 확보를 우선시하면서 협상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합병 과정에서 이사회를 재구성하는 등 지배구조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사례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텍이 성숙되고 있는 만큼 성공적인 M&A 사례가 나오면 시장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기업의 지분과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정비하고 IPO뿐 아니라 M&A도 주요 투자금 회수 수단으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 기술과 자산을 결합하는 뉴코(NewCo) 모델도 M&A 시장을 활성화하는 중간 단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필요한 것은 M&A 건수를 단순히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수출과 공동개발, IPO와 함께 기업 성장과 투자금 회수를 위한 선택지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M&A를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가 향후 산업 경쟁력 확보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