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생산 50만대 늘리고 신차·부분변경 58종 공세
HEV·픽업 등 빈 차급 채우고 현지 생산 확대
SDV·AI로 바뀌는 미래차 경쟁도 변수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바라본 도로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그대로 드러냈다. 도요타 RAV4와 캠리, 혼다 CR-V 등 일본 브랜드 차량이 도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대자동차 투싼과 팰리세이드, 기아 스포티지도 심심찮게 눈에 들어왔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대 판매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우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는 사실을 거리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한 블록, 두 블록을 걸으며 도로를 살펴볼수록 도요타와 혼다의 두터운 저변도 동시에 체감됐다. 택시와 일반 승용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일본 브랜드 차량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지역과 차급에 따라 실제 판매 구성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글로벌 완성차 3위까지 올라선 현대차그룹이 세계 1위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미국 핵심 시장에서 지금보다 더 넓은 소비자층과 차급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어느 때보다 빠르게 선두권을 추격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의 올해 3분기 미국 판매량은 50만62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5.4% 증가했다. 분기 판매가 50만대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 모두 역대 최대 3분기 판매 기록을 세웠다.
미국 판매 3위 포드와의 격차도 크게 좁혔다. 포드는 3분기 대형 트럭 등을 제외한 경량차 기준 50만7395대를 판매했다. 현대차그룹과의 차이는 불과 1195대다. 현대차그룹은 7월과 8월 월별 판매에서 포드를 앞서며 사상 첫 분기 3위 진입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포드가 예상보다 선전하면서 4위를 유지했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판매를 이끈 것은 SUV와 하이브리드차다. 3분기 투싼은 6만4075대가 판매돼 현대차·기아 전체 차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다. 9월 판매량도 2만3164대로 전년 동월 대비 31.8% 늘었다. 팰리세이드는 52.1%, 기아 텔루라이드는 41.9% 증가했다.
하이브리드 판매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현대차·기아의 3분기 미국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13만8112대로 전년 동기 대비 53.4%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 판매량도 16만423대로 18.4% 늘면서 전체 판매의 31.7%를 차지했다.
현대차가 1일(현지시간) 5세대 완전변경 모델 ‘디 올 뉴 투싼’의 세계 최초 공개 장소로 뉴욕을 택한 것도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투싼은 2004년 출시 이후 글로벌 누적 판매 1060만대를 넘어선 현대차의 대표 차종이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만 220만대 이상 팔렸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뉴욕에서 열린 국내 미디어 간담회에서 “현대차에 가장 중요한 시장은 미국이고, 미국에서 가장 상징적인 도시는 뉴욕”이라며 “뉴욕 거리에는 이미 수많은 현대차가 달리고 있지만 투싼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딜러들이 매일 아침 더 많은 물량을 배정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수요가 넘쳐난다”며 “투싼의 판매에는 한계가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추가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북미 생산과 제품 투자를 동시에 확대한다. 8월 ‘2026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2030년까지 글로벌 생산능력을 127만대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가운데 북미에서만 생산능력을 50만대 추가한다.
신차도 북미에 집중한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세계 시장에 신차와 부분변경 모델 100종 이상을 선보인다. 북미에 투입되는 모델은 58종으로 한국 49종, 유럽 41종, 인도 26종, 중국 22종보다 많다.
뉴욕에서 공개한 신형 투싼도 이 같은 북미 공략의 중심에 있다. 신형 투싼은 2027년 북미 시장에 출시되며 미국 앨라배마공장에서도 생산된다. 제네시스도 브랜드 최초의 초대형 플래그십 전기 SUV GV90을 앞세워 미국 고급차 시장의 외연을 넓힌다.

지난해 도요타그룹은 1100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6년 연속 세계 판매 1위를 지켰다. 현대차그룹은 도요타그룹과 폭스바겐그룹에 이어 글로벌 판매 3위를 기록했다. 세계 1위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도요타가 오랫동안 강점을 보여온 하이브리드 시장을 얼마나 빠르게 따라잡느냐가 관건이다.
현대차그룹이 아직 충분히 진입하지 못한 차급을 채우는 작업도 시작한다. 현대차는 현재 진입하지 않았거나 입지가 약한 ‘화이트 스페이스’가 전체 자동차 시장의 약 29%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픽업트럭과 경상용차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현재 미국에서 판매하는 유니바디 방식의 싼타크루즈에 이어 보디온프레임 방식의 중형 픽업을 추가할 계획이다. 포드가 3분기 미국에서 트럭만 31만대 이상 판매한 점을 고려하면 픽업은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추가 판매를 확보하기 위해 지나칠 수 없는 시장이다.
공급망 현지화도 속도를 낸다. 현대차는 북미 부품 현지조달률을 기존 60% 수준에서 2030년 80% 이상으로 높일 방침이다. HMGMA와 앨라배마공장을 중심으로 미국 판매 증가에 맞춰 현지 생산 비중도 확대한다.
관세와 환율,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미국에서 판매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생산하고 부품을 조달해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늘어난 생산능력을 판매와 수익성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현대차그룹이 세계 1위를 바라보는 사이 자동차 산업의 경쟁 기준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기존에는 판매량과 생산능력, 품질이 경쟁력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과 자율주행, AI까지 경쟁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체 자율주행 AI인 ‘아트리아 AI’를 개발하는 동시에 엔비디아와 자율주행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모셔널을 통한 로보택시 사업과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중심으로 한 로보틱스·피지컬 AI 사업도 추진 중이다. 현대차는 8월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향후 지향점을 ‘피지컬 AI 기업’으로 제시했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3분기 미국 판매 3위에 오르지 못한 차이는 1195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계 1위까지의 거리는 단순히 이 숫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북미에서 생산을 늘리고 하이브리드와 픽업 등 제품군을 넓히는 동시에 SDV와 자율주행, AI로 옮겨가는 미래차 경쟁에서도 성과를 내야 한다. 뉴욕에서 공개한 신형 투싼을 시작으로 현대차그룹의 북미 신차 공세가 글로벌 선두권과의 격차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