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사 선택·체급·현지 투자비는 높은 문턱
글로벌 톱10 韓 하나마이크론 유일
엠코 등 대형사 가능성도…아직 선정은 안갯속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가동이 가까워지면서 국내 반도체 후공정(OSAT) 업체들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나마이크론과 윈팩, SFA반도체, 한양디지텍 등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최근 강세를 보인 배경에도 삼성전자 테일러팹의 후공정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테일러팹에서 생산되는 반도체가 결국 패키징과 테스트 등 후공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삼성전자와 오랫동안 거래해 온 국내 업체들이 함께 미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기대다. 특히 대규모 파운드리 물량의 후공정을 확보하면 장기간 안정적인 매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업계의 관심도 높다.
관심의 중심에는 테슬라가 있다. 삼성전자는 테일러팹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AI 칩 ‘AI6’를 생산할 예정이다. 테일러팹은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첨단 파운드리 생산기지로,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 고객사의 첨단 시스템반도체 수요를 흡수할 핵심 거점으로 꼽힌다.
테슬라 AI6처럼 대규모 물량을 수주한 경우 전공정뿐 아니라 이후 패키징과 테스트 물량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누가 테일러의 후공정을 맡느냐”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한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는 “반도체 장비사는 장비를 배로 태워 보내면 끝이지만 OSAT 기업들은 현지 팹 옆에서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물량을 처리해야 한다”며 “테일러 물량을 맡는다는 것은 단순히 장비 몇 대를 공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투자 결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가에 반영된 기대와 실제 사업 가능성 사이에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 테일러팹의 후공정을 국내 어느 OSAT 업체가 담당할지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무엇보다 파운드리는 삼성전자만의 의사결정으로 후공정 업체를 정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객사가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사업인 만큼 어떤 패키징 방식을 적용할지, 어느 업체에 후공정을 맡길지 등에 최종 고객사의 요구가 반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테일러팹처럼 고객사 주문을 기반으로 가동되는 파운드리는 후공정 업체 선정에도 최종 고객사인 테슬라의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삼성전자가 기존 국내 협력사와 미국에서도 협업할 의사가 있더라도 AI6의 고객사인 테슬라의 패키징 사양과 공급망 전략이 OSAT 선정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생산능력과 투자 여력도 문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4년 글로벌 OSAT 상위 10개사의 합산 매출은 415억6000만달러로 전년보다 3% 증가했다. 이 가운데 국내 기업은 하나마이크론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하나마이크론은 매출 9억2000만달러로 세계 8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선두 업체와의 체급 차이는 상당하다. 1위 대만 ASE의 매출은 185억4000만달러로 상위 10개사 전체 매출의 약 45%를 차지했다. 미국 엠코테크놀로지는 63억2000만달러로 2위, 중국 JCET는 50억달러로 3위를 기록했다. ASE 한 곳의 매출만 하나마이크론의 약 20배, 엠코도 약 7배에 달한다. 상위 업체와 국내 기업 간 체급 차이가 상당한 셈이다.
후공정은 단순히 완성된 웨이퍼를 포장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웨이퍼에서 다이를 절단한 뒤 본딩·몰딩해 패키지를 만드는 조립 공정과 전기적·열적 특성을 검사해 불량을 가려내는 테스트 등으로 구성된다. 비용 효율성과 품질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합반도체기업(IDM)과 팹리스는 이러한 작업을 전문 OSAT에 위탁한다.
한 반도체 장비업체 대표는 “국내 OSAT 기업들은 규모와 기술력 측면에서 테일러팹에서 나오는 많은 물량을 담당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며 “고객사 입장에서는 패키징부터 웨이퍼 테스트, 패키지 테스트까지 폭넓게 대응하기를 원할 텐데 이런 측면에서는 글로벌 대형 OSAT가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SFA반도체는 필리핀에서 웨이퍼 백그라인딩부터 조립·패키징, 최종 테스트와 출하까지 턴키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하나마이크론 역시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문제는 테일러의 대규모 물량을 안정적으로 처리할 생산능력과 이를 위해 미국에 투자할 여력이다.
OSAT 생산시설은 인건비와 운영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실제 글로벌 후공정 생산기지는 대만과 중국을 비롯해 말레이시아·필리핀·베트남 등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국내 중견 OSAT 업체가 아직 확보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테일러 물량만을 바라보고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은 미국에 신규 생산시설을 구축하기에는 부담이 상당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글로벌 2위 OSAT인 미국 엠코테크놀로지가 테일러 물량을 담당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엠코가 거론되는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엠코는 삼성전자와 오랜 기간 후공정 분야에서 거래해 왔으며 국내에도 인천 송도·계양과 광주 등에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내 투자도 진행 중이다. 엠코는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에 첨단 패키징·테스트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다만 이것만으로 엠코가 테일러 물량을 가져갈 것으로 보는 것은 섣부르다. AI6에 적용될 구체적인 패키징 방식과 요구 성능, 생산 시점과 물량, 테슬라와 삼성전자의 공급망 전략 등에 따라 업체 선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엠코가 CoWoS(Chip-on-Wafer-on-Substrate) 등 첨단 패키징에 강점을 가진 업체인 만큼 테일러팹에서 생산할 로직 반도체의 플립칩(Flip Chip) 공정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플립칩은 칩을 뒤집어 기판 등에 직접 연결하는 패키징 방식이며, CoWoS는 로직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인터포저 위에 통합하는 2.5D 첨단 패키징 기술이다.
그러나 CoWoS와 플립칩을 서로 다른 영역의 기술로 나눠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테일러팹에서 생산되는 로직 반도체의 후공정이 반드시 CoWoS와 같은 고난도 이종집적 패키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CoWoS 등 첨단 패키징 역량을 갖춘 글로벌 OSAT라면 플립칩 공정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테일러팹 후공정 업체 선정에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OSAT 산업 자체의 위상 변화도 있다.
과거 후공정은 웨이퍼에서 만들어진 칩을 잘라 기판에 붙이고 포장한 뒤 정상 작동 여부를 검사하는 제조의 마지막 단계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AI와 고성능컴퓨팅(HPC) 반도체가 확산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서로 다른 칩을 하나의 패키지에 연결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이 데이터 처리속도와 전력효율, 전체 시스템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로 떠올랐다.
시장은 이미 대만과 중국의 대형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집계 기준 2024년 글로벌 OSAT 시장에서 대만 업체의 매출 비중은 42%, 중국은 31%, 미국은 17%였다. 세 나라 업체가 전체 시장의 약 90%를 차지한다. 한국의 비중은 약 4%에 불과했다.
투자 격차도 크다. 글로벌 OSAT 상위 10개사의 2024년 설비투자 규모는 전년보다 약 38% 늘어난 56억달러였다. 이 가운데 대만 업체가 약 27억달러, 중국이 약 20억달러를 투자했다. 반면 한국은 전공정 장비 투자에서는 세계 2위 수준이지만 후공정 투자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으로 평가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