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뇌영상·유전체 장기 추적해 혈액검사 기준·치료 용량 마련

기존에는 증상 발생 이후의 치료를 중점적으로 봤던 ‘치매’에 대해 발병 위험을 미리 찾아내고 진행을 늦추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이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선 한국인의 임상정보와 뇌영상, 유전체, 혈액 바이오마커를 장기간 추적한 국가 코호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서상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14일 한국과학기자협회와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데이터, 뇌를 읽고 삶을 잇다’를 주제로 개최한 미디어세미나에서 “한국인은 서양인과 질환 특성이 다른 만큼 외국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한국인에게 맞는 진단과 예방·치료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치매는 하나의 질환명이 아니라 기억력과 인지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뜻한다. 치매의 약 7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아밀로이드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이 쌓이고 신경퇴행이 진행되면서 발생한다. 아밀로이드 축적부터 치매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약 10~20년이 걸려 조기에 발견하면 개입할 수 있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길다.
문제는 기존 진료만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병리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주로 증상을 평가하고 다른 질환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단하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치매 전문의가 진단하더라도 정확도는 약 70%에 그친다”며 “치료를 위해서는 원인 병리를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밀로이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이 도입되면서 인지기능이 정상인 사람 중에서도 아밀로이드가 축적된 사례가 확인됐다. 인지기능이 정상이면서 아밀로이드가 있는 사람이 치매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는 평균 약 14년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성별과 유전자형 등에 따라 진행 기간은 약 10년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서 교수는 “같은 병이라고 해도 진행 경과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개인별 특성에 맞춰 파악하는 정밀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밀의료를 구현하기 위한 기반이 국가 코호트다. 코호트는 특정 환자군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같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변화를 장기간 추적하는 연구 방식이다. 한 시점의 검사 결과가 아닌 발병 전부터 진단과 치료 이후까지의 전체 경로를 살필 수 있다.
국립보건연구원이 구축한 노인성 치매 코호트 ‘K-ROAD’에는 전국 20여 개 상급종합병원과 지역 치매안심센터가 참여하고 있다. 한 사람의 자기공명영상(MRI)과 아밀로이드 PET, 유전체, 혈액 바이오마커, 인지검사, 임상 경과 등을 통합한 멀티모달 데이터를 장기간 축적한다.
서 교수는 “한 사람에게서 여러 검사를 계속 추적해야 한국형 기준선과 혈액검사의 판정 기준, 안전한 치료 용량을 정할 수 있다”며 “데이터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환자의 진단과 치료를 바꾸는 것이 코호트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실제 코호트 분석에서는 한국인과 서양인의 차이도 확인됐다. 인지기능이 정상인 사람의 아밀로이드 양성률은 한국인이 약 20%, 서양인이 약 30%로 나타났다. 한국인은 아밀로이드가 쌓이는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일단 축적되면 인지장애로 진행하는 경향은 더 뚜렷했다.
성별에 따른 차이도 관찰됐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뇌 연령을 분석한 결과 한국 여성은 영국 남녀와 한국 남성을 포함한 비교군 가운데 상대적으로 뇌 연령이 젊었다. 다만 한국 여성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으면 뇌 노화가 빠르게 진행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 남성에게는 저체중을 비롯한 다른 위험요인을 함께 관리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코호트는 검사 문턱을 낮추는 데도 활용된다. 아밀로이드 PET은 비용이 비싸고 방사선 노출이 있어 모든 환자에게 시행하기 어렵다. 반면 혈액 바이오마커를 활용하면 비교적 간단한 채혈로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평가할 수 있다.
국내 코호트 데이터에서 혈액 바이오마커의 진단 정확도는 인지기능이 정상인 사람에서 곡선하면적(AUC) 0.93, 인지기능이 저하된 사람에서 약 0.90으로 나타났다. 혈액검사와 확진검사를 진단 과정에 적용하면 기존 약 70%였던 진단 정확도를 90% 수준까지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치료의 안전성을 높이는 근거로도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처방되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는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를 제거해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약 27% 늦춘다. 다만 일부 환자에게 뇌부종이나 미세출혈 등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RIA)이 발생할 수 있어 정기적인 MRI 검사가 필요하다.
서 교수는 “약이 치료의 길을 열어주지만 운동과 식사, 취미활동, 인지훈련을 병행해야 효과를 더욱 키울 수 있다”며 “앞으로 혈액검사와 디지털 인지검사로 환자를 선별하고 유전체와 영상검사로 각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약물을 찾는 개인 맞춤형 치료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