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원유 고갈론과 AI 속도조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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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국제경제부 부장

석유 고갈론이 남긴 뼈저린 교훈
AI 개발사 모두 "속도 조절해야"
AI의 진짜 위험은 극단적 의존
비관ㆍ낙관론 사이에서 따져봐야

‘원유 고갈론’이 처음 거론된 것은 1956년 미국석유협회 세미나였습니다. 미국 원유 생산이 1965~1970년 사이 정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었지요. 이를 주장한 인물은 지질학자 킹 허버트(King Hubbert) 박사였습니다.

발언은 번역과 번역을 거치며 와전됐습니다. 학술지 사이언스다이렉트에 따르면 허버트 박사의 주장은 원유 고갈이라는 경고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확인된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을 연평균 원유 수요로 나누었고 이걸 바탕으로 원유 잔존량을 추정했을 뿐이었지요. 다만 원유를 수입에 의존했던 신흥국은 이런 고갈론을 국민 통제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1980년대 우리나라까지 퍼진 원유 고갈론은 에너지 위기, 나아가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을 펼쳤던 허버트 박사가 글로벌 정유사 셸(Shell) 소속의 탐사 전문가였다는 데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원유 고갈론은 명분과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20세기 말 원유에 목말랐던 주요국이 시추 및 탐사 기술의 비약적인 성장을 끌어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어딘가에서는 원유가 새롭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매년 수백 곳에 달하는 매장지가 발견되고 이 가운데 채산성을 고려해 100여 건에 대해 본격적인 시추가 시작됩니다. 2024년 기준 120여 곳의 새로운 매장지에서 본격적인 시추가 시작됐습니다.

탐사 기술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여기에 셰일가스 혁명, 심해 유전 채굴 본격화, 시추 기술 발전 등으로 경제적으로 회수 가능한 매장량이 계속 증가 중입니다. 과거 정유업계가 주장했던 원유 고갈 시점은 점진적으로 먼 미래로 연기됐습니다. ‘원유 고갈’이라는 위험 자체가 사라졌다기보다 기술 발전이 공급 제약을 완화한 것에 가깝습니다.

사정이 이런 가운데 여전히 원유 고갈론을 주장하는 업계가 있습니다. 바로 정유업계이지요. 이들은 21세기 들어선 뒤에도 “앞으로 몇 년 안에 원유가 고갈된다”며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습니다. 동시에 발 빠르게 차세대 에너지에 대대적인 투자를 추진했는데요. 한때 우리나라 정유업계를 대표했던 SK와 LG 관계사 등이 이제 전기차 배터리를 개발하고 생산 중입니다.

2026년 AI 산업에서도 당시와 똑같은 장면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AI 위험을 가장 크게 경고하는 이들도 AI를 가장 앞서 개발하는 테크 기업들입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AI 능력 향상 속도를 늦추자”고 제안했습니다. 경쟁사인 오픈AI 샘 올트먼 CEO가 이에 동의했고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 xAI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 등도 유사한 주장을 앞세워 힘을 보탰습니다. AI 패권을 놓고 가장 치열하게 경쟁해온 이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기술에 제동을 거는 셈이지요.

능력이 향상될수록 오작동ㆍ사이버 공격ㆍ허위정보ㆍ일자리 대체ㆍ권력 집중 같은 부작용의 규모도 함께 커질 수 있어 문제입니다. 특히 AI 시스템이 더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다른 시스템과 연결될수록 작은 오류 하나가 훨씬 넓게 번질 수 있다는 점이 원유와 다릅니다.

그러나 위험 가운데 일부는 실증적으로 확인된 위험이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서 “AI가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와 “AI는 이미 아무 위험도 없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현재 확인된 증거는 전혀 없는 추론일 뿐입니다.

석유는 부족해서 문제가 될 것이라 했지만 오히려 너무 많이 써서 문제가 됐습니다. AI 역시 ‘너무 강해져서’가 아니라 ‘이를 악용해서’가 문제가 될 가능성이 더 큰 셈이지요.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순간보다 인간이 극단적으로 AI에 의존하게 되는 게 더 큰 위험입니다. 비관론과 낙관론 모두를 지닌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느냐를 따지기보다 극단적인 의존도부터 낮춰야 합니다.

나아가 객관적인 근거도 없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AI 위기론을 믿을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 따져보고 검색하고 살펴봐야 합니다. 원유 고갈론을 공포처럼 여겼던 그때와 지금의 우리는 크게 달라졌거든요.

jun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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