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위임·자율강화 재편 뒤따르고
내부통제 강화해 방만경영 경계를

지난 6월 한국은행은 AI 도입 초기 3년의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AI를 활용하는 근로자의 업무시간은 평균 3.8%, 주 40시간 기준 1.5시간 감소하였다. 그런데 업무시간은 줄었지만 생산성은 증가하지 않았다는 다소 직관적이지 않은 통계도 함께 제시되었다. 업무시간 절감률과 업무처리량 증가율의 상관계수가 0으로 나타난 것이다. 보고서는 이를 조직 구조의 경직성 때문으로 분석했다. 의사결정과 승인 절차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기다리는 동안 절감된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성과가 소득으로 직결되고 업무 자율성이 높은 자영업자와 전문직에서는 시간 절감이 실제 생산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AI 역시 효과를 내려면 그에 걸맞은 프로세스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최근 정부는 공공기관 기능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이미 9월 1일부터 KTX와 SRT가 통합 운행에 들어갔고, 발전 5사를 하나로 묶는 등 유사·중복 기능 통합으로 100개가 넘는 기관을 줄인다. 물론 모든 분야를 통합하는 것은 아니다. LH는 오히려 두 회사로 분리하는데, 개발과 주거복지라는 두 목표를 분리해 각각을 더 빠르게 달성하겠다고 하였다.
정부가 공공기관 수를 감축하는 것은 일단 높이 평가할 만하다. 공공기관의 장은 종종 정치적 보상으로 연결되어 왔고, 관련 부처 고위 공무원들의 퇴임 후 일자리로 인식되어 온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기관을 나눌 때의 명분도 효율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001년 발전 부문을 한전에서 떼어낸 것도, 고속철도에 별도 운영자를 들인 것도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같은 목표를 두고 25년 전에는 나누고 지금은 합치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그동안 적지 않게 나왔으나, 그 분석이 이번 설계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1980∼1990년대 민영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던 시기에도 소유권 이전보다는 실질적인 경쟁 도입이 효율성을 높인다는 연구결론이 힘을 얻었으며, 형식적 분할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있었다. KTX와 SRT의 승차역이 서로 달랐다는 점이나, 발전 5사가 모두 한전의 자회사로 남아 있었다는 점은 경쟁의 유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통합 이후 어떤 경쟁과 책임 구조를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통합에 따라 경쟁 방향이 밖에서 안으로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회사를 통합하여 이전에 독립된 회사가 개별 본부가 되는 경우, 이들 본부 간에 매우 치열한 내부경쟁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해외에서 서로 경쟁하며 중복투자가 된 측면도 있겠지만, 반면으로 서로의 경쟁을 위해 해외 진출에 더 적극적이어서 국내로만 향했던 시각이 해외로 넓혀진 측면도 있다. 통합 이후에는 이러한 효과가 사라질 수 있다. 통합 이후 의사결정이 얼마나 빨라지는지, 권한이 어디에 배분되는지, 그 결과에 누가 책임지는지를 함께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통폐합으로 임원의 수가 줄어든다면 소수의 임원이 더욱 강력한 권한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권한을 일선으로 위임하고 자율성과 책임을 함께 부여하는 방향으로 프로세스를 재편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관료주의적 문화는 이러한 프로세스와 잘 맞지 않으므로 문화적 변화도 함께 가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1990년대에 불거졌던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방만 경영이라는 문제가 되풀이될 수 있다.
다만 권한을 아래로 내리는 데는 조건이 붙는다. 최근 제주에서 실종 수사가 연쇄적으로 허위 종결된 사건이 그 조건을 보여준다. 접수 두 시간 반 만에 사건이 종결되고 기록까지 삭제됐지만 이를 걸러내는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도 사무처가 결정했고 위원들은 그 과정을 기억하지 못했다. 따라서 자율성을 높이는 프로세스에는 내부통제와 감사 프로세스를 어떻게 구축할지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프로세스를 바꾸는 과정에는 시행착오가 따르고 기존의 신뢰성과 안정성이 흔들리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효율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때 과거로 돌리자는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전 합의가 필요하며, 이를 보여주는 지표가 비교적 빠른 시간에 제시되어야 한다. 기관의 수를 줄이는 것은 개혁의 시작이지 성과가 아니다. 이번 통폐합이 실질적인 공공부문 혁신으로 이어지기 위해 목표와 성과지표, 프로세스와 문화 변화까지 보다 정교한 접근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