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를 보다 보면 음식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가벼운 증상부터 전신 두드러기, 복통과 구토, 심하면 호흡곤란까지 나타날 수 있다. 그럴 때면 나도 의사이기 전에 오래된 기억 하나를 가진 환자가 된다.
초등학생 때였다. 복숭아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방과 후 집에 놓여 있던 조금 덜 익은 천도복숭아를 한입 베어 물었다. 잠시 후 배가 뒤틀리고 구토가 시작됐다. 온몸에는 두드러기가 솟았다. 좋아하던 복숭아 한 알이 어린 나를 순식간에 응급환자로 만든 것이다. 이후에도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심한 두드러기가 나타났다. 의사가 된 지금도 여름 과일 가게의 복숭아 앞에서는 환자보다 더 조심스러운 사람이 된다.
생각해 보면 복숭아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 문제는 복숭아를 바라보는 내 면역계의 오해다. 우리 몸의 면역계는 세균이나 독소 같은 위험을 감지하고 대응하는 정교한 방어체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면역계는 복숭아 속 특정 단백질을 위험한 침입자로 판단한다. 알레르겐에 노출된 뒤 IgE 항체를 만들고, 이 항체가 비만세포 표면에 자리 잡아 다음 만남을 기다린다. 의학에서는 이를 ‘감작’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한번 도둑이 들었던 집에 너무 예민한 경보장치를 설치해 놓은 것과 비슷하다. 복숭아가 다시 들어오면 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린다. 알레르겐이 비만세포 표면의 IgE와 결합하면서 비만세포가 활성화되고 히스타민을 비롯한 여러 염증 매개물질이 분비된다. 그 결과 피부에는 두드러기가 생기고 복통과 구토가 나타나기도 한다. 심하면 기도가 좁아지고 혈압이 떨어지는 아나필락시스까지 발생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면역력이 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면역계가 특정 대상에 지나치게 반응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나는 문득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면역반응도 도를 넘으면 오히려 자신의 몸을 괴롭힌다. 인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이 지나치면 집착이 되고, 걱정이 지나치면 불안이 된다. 신중함이 지나치면 결단하지 못하고, 정의감마저 너무 지나치면 독선이 되기 쉽다.
그렇다면 복숭아를 좋아했던 나는 과연 복숭아를 다시 먹을 수 있을까. 여름이면 복숭아의 탐스러운 자태와 향기 앞에서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지만 복숭아 앞에서만큼은 망설여진다. 언젠가 내 면역계가 품은 오해의 정체를 제대로 확인하는 날이 올까. 그때까지는 나와 복숭아의 거리는 한 뼘쯤 남겨두어야 좋겠다.
과유불급. 나의 오랜 짝사랑은 오늘도 눈으로만 계속되고 있다.
서종호 부천시민의원 진료원장/한국의사시인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