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 국제경제부장

그러나 AI 경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진짜 승부처는 반도체만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데이터센터 건설비를 누가 조달하고 마지막에 누가 위험을 떠안을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맥킨지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AI 데이터센터에 약 7조달러(약 9700조원)가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웬만한 국가의 경제 규모를 뛰어넘는 돈이 불과 몇 년 사이 서버와 발전소, 송전망에 쏟아지는 셈이다.
현금 부자인 빅테크조차 이 비용을 자체 자금만으로 감당하지 못한다. 프로젝트파이낸싱과 회사채, 사모대출, 장기 임차계약이 동원된다. 보험사와 사모펀드도 AI라는 깃발 아래 몰려들었다. 소프트뱅크는 오픈AI 투자와 관련한 차입금을 재조달하기 위해 최대 200억달러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앤스로픽도 xAI 데이터센터의 컴퓨팅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3년간 450억달러를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엔비디아와 오픈AI의 관계다. 오픈AI는 자체 칩을 개발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려 한다. 그런데 엔비디아는 오픈AI가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터센터를 빌리는 데 필요한 비용을 최대 1050억달러까지 보증하기로 했다. 칩 시장에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고객의 데이터센터 임차를 기존 공급업체가 보증하는 구조다. 엔비디아에는 칩 수요를 미리 확보하고, 오픈AI에는 투자비 부담을 덜어주는 합리적인 거래일 수 있다. 하지만 공급자와 고객, 투자자와 보증인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AI 생태계의 위험이 어디에 쌓이는지도 불분명해졌다.
그렇다고 AI 투자를 거품으로 단정할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인터넷 혁명도 과잉투자와 기업 파산을 겪었지만 세상을 완전히 바꿨다. 다만 기술의 가능성과 투자 구조의 건전성은 별개의 문제다. AI가 인류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기술이라는 사실이 모든 데이터센터의 수익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더 성능 좋은 칩이 나오면 막대한 돈을 들인 기존 설비가 예상보다 빨리 낡을 수 있다. 전력망 구축이 늦어지거나 기업의 AI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장기 임대료와 이자는 고스란히 부담으로 남는다.
한국도 청구서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 반도체 기업은 메모리 수요 급증의 최대 수혜자다. 아울러 정부와 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 건설과 관련 산업 육성을 서두른다. 그러나 투자액과 서버 대수만 셀 것이 아니라 최종 수요자가 누구인지, 그 수요가 꺾일 경우 누가 손실을 부담하는지 살펴야 한다. 전력 확보 못지않게 금융구조의 지속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다.
AI 시대의 승자가 반드시 가장 빠른 칩을 만든 기업이나 가장 많은 데이터센터를 지은 국가가 아닐 수 있다. 거대한 투자를 생산성 향상과 수익으로 연결하면서도 부채와 보증의 연쇄를 견딘 기업과 국가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7조달러의 질주는 이미 시작됐다. 이제 물어야 할 것은 AI가 어디까지 발전할지가 아니라, 그 질주의 청구서를 끝내 누가 받아 감당하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