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공포' 네팔·티베트 대홍수, 빙하의 습격 [이슈크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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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도 빙하호 범람도 아니었다…해발 5000m 암반·빙하 붕괴가 발단 원인
초속 50m 얼음·바위가 하천 만나 토석류로…100㎞ 밖까지 피해 지역 확산
자연댐 붕괴로 2차 홍수 우려…온난화 시대 고산 재난 대비 시험대


▲27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트리슐리의 건물과 주변이 대홍수로 밀려든 진흙에 뒤덮여 있다. 드론 촬영. (로이터/연합뉴스)


쉬이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상. 모두 AI 영상을 의심했고 차라리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라는 반응도 나왔죠. 거대한 얼음과 바위, 흙탕물이 순식간에 마을을 집어삼키는 모습은 너무나 참혹했거든요.

하지만 영상 속 장면은 실제였습니다. 말문이 막히는 대홍수 현장이었죠. 26일(이하 현지시간)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암반과 빙하가 무너졌습니다. 얼음과 바위는 계곡을 따라 토석류로 변했고, 보테코시강과 트리슐리강 일대로 밀려들며 마을과 도로, 발전시설을 휩쓸었죠.

한국시간 28일 오후 3시 기준 네팔 경찰이 확인한 사망자는 469명입니다. 로이터와 AP통신에 따르면 중국 티베트에서 확인된 사망자 3명을 더하면 모두 472명이죠. 실종자는 네팔 977명, 티베트 558명 등 153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실종자 가운데는 30여 개국 출신 여행객과 순례객도 다수 포함됐는데요.

현지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두산에너빌리티와 한국남동발전 소속 한국인 9명도 아직 소재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별도로 고립됐던 한국인 10명 가운데 9명은 27일 헬기로 안전지역에 이송됐고, 현장소장 1명은 현지 직원들과 함께 남았죠. 외교부·경찰청·소방청 인원 11명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은 28일 카트만두에 도착해 수색 지원에 들어갔습니다.


▲26일(현지시간) 중국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감시카메라 영상에 티베트자치구 지룽 통상구를 덮친 것으로 추정되는 돌발홍수 모습이 담겨 있다. AFP는 위성사진과 거리뷰 자료를 통해 촬영 장소를 확인했지만 원본 게시물은 확인하지 못했으며, 해당 영상은 이후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삭제됐다. 중국중앙TV(CCTV)는 네팔 측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지룽 통상구에서 다수의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AFP/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비두르시 데비가트에서 돌발홍수로 주택들이 진흙에 잠겨 있다. 이곳은 트리슐리강과 타디강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네팔 재난당국은 티베트 접경지역을 덮친 홍수 발생 24시간이 지난 이날에도 823명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대홍수 원인, 지진이 빙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었다

재난은 26일 오전 8시 37분께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지진이 빙하를 무너뜨렸다는 설명이 나왔지만, 미국지질조사국(USGS)의 재분석 결과는 반대였는데요. 암반과 빙하가 계곡에 충돌하고 토석류가 이동하면서 지진과 비슷한 진동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죠.

위성사진 분석에서는 랑탕리룽 일대의 빙하 하부 약 0.2㎢가 해발 약 5200m 지점에서 떨어져 약 1200m 아래 계곡으로 추락한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27일 AP통신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빙하만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래쪽 암반이 먼저 무너지거나 빙하와 함께 붕괴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는데요.

암반과 얼음은 렌데 콜라강 계곡을 내려오면서 흙과 바위, 물을 계속 끌어들였습니다. 처음에는 암석·빙하 눈사태였지만 이동 과정에서 고속 토석류로 바뀐 건데요. 중국 정부 지질학자는 초기 토석류의 속도를 초속 약 50m, 시속 약 180㎞로 추정했습니다.

이후 흙탕물은 보테코시강과 트리슐리강을 따라 남쪽으로 확산했죠. 로이터가 27일 공개한 지형 분석에 따르면 하천은 붕괴 지점에서 100㎞ 이상 떨어진 곳까지 변형됐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강 수위가 30분 만에 최대 9m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네팔 총리실의 26일 초기 보고를 보면 수력발전시설 9곳과 차량 통행이 가능한 교량 19개, 도로 약 40㎞가 파괴되거나 유실됐죠.

이번 사고는 일반적인 빙하호 붕괴홍수와도 다릅니다. 기존 빙하호를 막고 있던 둑이 먼저 터진 것이 아니라 암반과 빙하의 붕괴가 토석류와 하천 홍수로 전환됐다는 설명이 현재 가장 유력한데요. 다만 얼음이 녹고 하천의 물을 흡수하는 과정, 붕괴물이 강을 일시적으로 막았다가 터지는 과정이 각각 얼마나 작용했는지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


▲위성영상업체 반토르가 27일 공개한 위성사진을 합성한 것으로, 왼쪽은 홍수 발생 전인 2023년 10월 18일 네팔 트리슐리강 주변의 교량과 건물 모습이며 오른쪽은 돌발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한 뒤인 27일 같은 지역의 모습. 구조대는 26일 네팔·티베트 국경을 덮친 돌발홍수와 산사태로 실종된 1400여명을 찾기 위해 진흙더미를 수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네팔 랑탕 지역에서 붕괴한 빙하의 모습이 위성사진에 포착됐다. 전문가는 이 빙하 붕괴가 돌발홍수와 산사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USGS·Landsat 9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지구 온난화가 원인일까?

이번 붕괴가 지구온난화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닙니다. 특정 재난과 기후변화의 인과관계를 밝히려면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고, 암반의 지질 구조와 강수량, 눈이 녹은 양 등도 함께 살펴야 하죠.

다만 온난화가 고산지대 위치의 암반과 빙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장기적인 배경이라는 데는 과학계의 견해가 모입니다. 기온이 오르면 빙하가 얇아지면서 산비탈을 지탱하던 힘이 약해지는데요. 암석 사이를 붙잡고 있던 영구동토층도 녹고, 녹은 물이 암반 틈으로 스며들면 경사면이 더 쉽게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가 3월 1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힌두쿠시·히말라야 지역 빙하는 1990년부터 2020년까지 면적의 약 12%, 추정 얼음 저장량의 9%를 잃었는데요. 2000년 이후 얼음 손실 속도는 이전보다 약 두 배로 빨라졌죠.


▲26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데비가트에서 주민들이 돌발홍수와 산사태로 진흙에 잠긴 건물과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당시 네팔과 티베트 접경 지역을 덮친 홍수와 산사태로 최소 103명이 숨지고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한 수백 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네팔 관광부는 재난 발생 수시간 뒤 외국인 341명을 포함한 관광객 403명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참올리와 랑탕이 먼저 보낸 경고

비슷한 사고는 과거에도 있었는데요.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21년 2월 7일 인도 참올리 재난입니다. 론티봉에서 떨어진 암반과 얼음이 토석류로 변해 수력발전소 2곳을 덮쳤고 200명 넘게 숨졌죠. 빙하호가 아니라 암반·빙하 붕괴가 하천 재난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와 가장 닮았습니다.

이번 발원지와 가까운 네팔 랑탕계곡에서는 2015년 4월 25일 규모 7.8의 고르카 지진이 빙하와 눈, 바위를 떨어뜨렸습니다. 랑탕마을이 매몰돼 최소 200명이 숨졌지만, 당시에는 지진이라는 뚜렷한 방아쇠가 있었죠.

2016년에는 티베트 아루산맥에서 완만한 경사의 빙하가 두 차례 잇달아 붕괴했습니다. 연구진은 빙하 바닥에 고인 물과 많은 여름비, 젖으면 미끄러워지는 점토층 등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는데요. 2002년 러시아 콜카빙하 붕괴 때는 약 1억㎥의 얼음이 최대 19㎞를 이동해 125명이 숨졌습니다.


▲26일(현지시간) 네팔과 티베트 접경 지역에서 네팔군 장병이 대규모 홍수와 산사태로 고립된 남성을 구조하고 있다. 네팔군이 촬영해 공개한 영상의 한 장면이다. 이번 재난으로 당시까지 약 100명이 숨지고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한 수백 명이 실종된 것으로 전해졌다. (AFP/연합뉴스)


끝나지 않은 홍수 위험

첫 홍수가 지나간 뒤에도 위험은 남았는데요. 붕괴 잔해가 하천을 막으면서 국경 지대에 임시 호수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로이터가 28일 전한 중국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임시 호수는 길이 약 150m, 깊이 40~50m로 추정됐는데요. 처음에는 저장된 물이 약 150만~200만㎥로 분석됐지만 이후 250만㎥를 넘어섰고 물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사흘 동안 약 300만㎥가 추가로 유입될 가능성도 남아 있죠.

중국은 기술자 8명을 투입해 항공조사와 3차원 모형 분석을 진행했는데요. 물을 서서히 빼내기 위한 배수로 설치도 검토했지만, 비가 이어지면서 주변 사면과 자연댐 위치 안정성은 더욱 나빠졌죠. 중국 당국은 추가 붕괴 위험이 커지자 현장에 있던 구조 인력과 차량을 철수시켰습니다.

이어 AFP는 28일 네팔 경찰이 “티베트 쪽에서 또다시 댐이 붕괴했다는 정보를 받았다”고 보도했는데요. 네팔 경찰은 구조·구호 활동에 투입된 보안요원과 구조대원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고 즉시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라고 경고했죠.

네팔 당국은 앞으로 1시간 30분 동안 구조작업을 중단했습니다. 북부 바그마티주 라수와 지역에서 진행되던 헬기 구조 작전도 멈췄고, 마을 주민들이 다급하게 언덕 위로 대피하는 모습도 목격됐는데요.

자연댐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흙과 바위, 얼음으로 만들어집니다. 물이 내부로 스며들거나 둑을 넘기 시작하면 빠르게 깎여 나갈 수 있죠. 한꺼번에 무너지면 막혀 있던 물과 토석이 다시 하류로 쏟아지면서 2차 홍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7일(현지시간) 네팔의 한 수해 지역에서 네팔군 헬기가 고립된 주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주택가 상공을 날고 있다. 네팔군이 공개한 영상 캡처. (로이터/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트리슐리강 인근 돌발홍수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굴착기를 이용해 피해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자연재해라도 피해는 줄일 수 있다

해발 5000m의 암벽 붕괴를 사람이 직접 막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위험한 사면을 찾아 감시하고 하류 주민을 피하게 하는 일까지 불가능한 것은 아닌데요.

실제로 스위스는 사전 감시와 대피로 대규모 인명피해를 피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발레주 블라텐에서는 산에서 떨어진 암석이 비르히 빙하 위에 쌓이면서 빙하의 이동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는데요. 당국은 지질학자들의 관측을 토대로 5월 19일 주민 약 300명을 대피시켰고, 5월 28일 빙하와 암석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마을 대부분이 매몰됐습니다. 마을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주민들이 먼저 빠져나가면서 더 큰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죠. 스위스연방 산림·눈·경관연구소도 같은 해 6월 2일 체계적인 감시와 선제적 대피가 참사를 크게 줄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스위스 칸더슈테크도 불안정한 암벽을 GPS와 레이더, 드론으로 감시하고 있는데요. 이 지역은 재난 대비에 1100만 스위스프랑(약 187억5900만원) 이상을 투입해 대규모 암벽 이동이 감지되면 주민들에게 최소 48시간 전에 경고하는 체계를 구축했죠.

네팔·티베트 국경에서도 먼저 위성 레이더와 과거 지형자료를 이용해 빙하 이동과 암벽 균열이 빠른 곳을 선별해야 하는데요. 사람이 많이 사는 하류와 연결된 위험지역에는 GPS와 카메라, 강수계와 수위계를 집중적으로 설치할 수 있죠. 붕괴 충격이나 급격한 수위 상승이 포착되면 하류의 사이렌과 휴대전화 경보를 자동으로 작동시키는 체계도 필요합니다.

이번에는 보테코시강 상류의 자동 관측장비가 급류에 휩쓸렸고, 네팔 지방당국은 티베트에서 시작된 홍수 정보를 사전에 받지 못했는데요. 빙하와 하천은 국경을 넘었지만, 관측정보와 경보는 국경에 막혔던 거죠.

토석류 예상 경로의 무분별한 개발을 제한하고 마을과 관광지에는 강변에서 고지대로 곧바로 이어지는 대피로도 마련해야 합니다. 모든 붕괴가 사전에 뚜렷한 신호를 보내지는 않기 때문에 예측 실패까지 고려한 자동경보와 대피 훈련이 함께 필요한데요.

자연이 만든 것은 산 위의 붕괴였습니다. 그러나 그 붕괴가 얼마나 큰 참사로 번지는지는 감시와 경보, 정보 공유와 대피계획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산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사람이 그 길목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할 수는 있죠. 예측의 한계만큼이나 신속한 경보와 대피에 더 힘쓸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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