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규제 합리화의 조건 ‘치료 접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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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제도와 이에 따른 규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 의료와 의약품 분야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이나 의료행위가 허용됐을 때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의료 규제가 다른 산업보다 엄격한 이유다.

다만 제도와 규제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국민의 편익 증진이나 의료분야에서 환자의 치료 접근성 강화를 위해 때론 ‘규제 합리화’는 필요하다. 치료제가 있는데 허가가 늦어 사용하지 못하고 의료기술이 있는데 제도에 막혀 치료받지 못한다면 규제는 장벽이 된다.

최근 정부가 잇따라 의약품과 의료 분야규제 합리화에 나선 이유도 이러한 문제 의식과 맞닿아 있다. 대표 사례가 임신중지 의약품 ‘미프진’이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에도 약 7년 동안 관련 입법이 지연되면서 국내에서는 정식 허가된 임신중지 의약품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정부에 좀 어려움이 있더라도 적정하게 투약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방치하는 건 옳지 않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무책임하다.”

지난달 열린 국무회의에서의 미프진 도입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입법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의료진 판단 아래 안전하게 사용할 방안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법제처는 최근 모자보건법 개정 전이라도 의약품 품목허가가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놨고, 관련 부처가 검토에 돌입했다. 행정절차의 정체로 많은 여성이 해외 구매나 불법 경로를 통해 해당 약물을 구입해 관리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올해 12월 정식 시행을 앞둔 비대면진료도 마찬가지다. 비대면진료 후 약을 받으러 약국을 찾아 헤매야 했던 비효율성 해소를 위해 정부는 모든 환자 대상 약 배송을 확대하기로 했다. 고령자와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환자, 의료기관과 약국이 부족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비대면진료 후 약 배송은 필수 조건이다.

다만 오배송과 의약품 변질, 복약지도 부실, 의약품 오남용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약 배송 자체를 막는 것이 해법은 아니다. 배송 품질관리와 본인 확인, 비대면 복약지도, 고위험 의약품 제한 등 촘촘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신약 허가와 바이오의약품 산업 육성·지원 등 최근 수개월 사이 의료와 제약바이오 산업 현장에 불어온 규제 합리화 바람이 거세다. 식약처는 지난 6월부터 평균 400일이 넘게 걸리던 의료제품 허가·심사 기간을 240일로 대폭 단축하는 방안을 전격 시행 중이다.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법 개정을 통해 과거 중증 질환자에 한정됐던 세포·유전자치료 기회가 희귀·난치 환자까지 대폭 넓어졌다.

‘2026 글로벌 바이오콘퍼런스(GBC)’에서 이 대통령은 “바이오 산업의 더 큰 도약을 위해서는 안전에 기반한 동반자적 규제혁신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물론 의약품과 의료 규제 합리화에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안전성’이다. 안전은 보건의료 정책이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다. 위험이 있다면 관리할 기준을 만들고 부작용 가능성이 있다면 감시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안전은 규제혁신을 막는 이유가 아니라 규제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다. 국민이 필요한 치료를 적시에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고 그 길에 촘촘한 안전장치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규제 합리화의 바른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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