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고요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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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때 ‘현고처사부군신위(顯考處士府君神位)’라고 지방에 썼다. 한자의 뜻을 모르던 시절, 할아버지를 지칭하는 줄로 알았다. 세월이 흘러, 얼마 전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영정 앞 위패에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쓰여 있다. 신위는 알겠는데 현고와 처사, 학생은 무엇이며, 부군은 또 무엇인가?

현고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고, 학생과 처사는 선비의 삶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학생은 학문을 닦는 유생이나 아직 관직에 나아가지 않은 선비를 가리킨다. 처사는 학문과 덕행을 갖추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머문 선비를 일컫는다. 다만 지방에서는 ‘학생’과 ‘처사’가 고인의 생애를 엄밀하게 규정한 칭호는 아니다. 부군은 고인을 높여 부르는 존칭이다.

벼슬을 했다면 ‘현고이조참판부군신위’라고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성리학 세계에서 벼슬만이 인간의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은 아니었다. 학문과 덕행을 중시한 선비들에게 ‘처사’는 다른 차원의 정신적 품격을 드러내는 이름이었다. 살아생전 명망이 높았던 이도 죽음 앞에서는 권력과 직함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선비로 돌아갔다. 어떤 명망과 권력도 죽음의 문턱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현고처사부군’이나 ‘현고학생부군’은 특정한 고유명사가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다. 그 안에는 한 인간의 흔적이 결국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보편적 의미가 담겨 있다. 평생 제각각의 이름과 굴곡으로 치열하게 살아낸 한 인간이, 이름도 직함도 모두 지워진 채 ‘어느 집안의 선비였던 아버지’라는 익명의 존재로 귀결된다. 삶의 무상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빈소 안팎에는 단체장이나 기관장 이름이 적힌 화환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과 함께. 떠난 자는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침묵 속으로 들어갔건만, 남은 자들은 명복을 빈다는 명분 아래 자신의 세속적 지위와 관계를 드러낸다. 마땅히 비워져야 할 자리인데, 산 자들은 그곳에도 여전히 지위의 흔적을 남긴다. 애도인지, 살아 있는 자들의 질서를 확인하는 일인지 혼란스럽다.

장자(莊子)의 사유를 빌리자면, 죽음이란 자연의 큰 흐름으로 돌아가는 온전한 무위(無爲)의 상태다. 세속의 옷을 벗고 돌아간 침묵의 자리에, 산 자들은 ‘인위(人爲)’를 덧댄다.

‘명(冥)’은 어둠과 아득함의 자리다. 죽음이란 세상의 빛에서 벗어나 깊은 적막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렇다면 고인이 깊은 적요의 공간에 다다를 수 있도록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진정한 헌사이자, 참된 명복을 비는 태도일 것이다.

부고를 띄우면 화환이 오고 문상객이 모인다. 문상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온라인 부고장에는 계좌번호가 적혀 있다. 편리한 시대로의 변화이지만, 정중하게 보내는 납부 고지서로 느껴진다.

화환과 문상객으로 떠들썩하고, 격식을 차린 추모의 말이 오간 뒤 골방에 앉아 부의금을 세는 풍경 속에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행위는 과연 성립할 수 있는가.

나는 부고를 띄우지 않았다.

내가 죽은 이후에도 진실로 명복을 빈다면, 부고를 띄우지 않길 바란다. 죽은 이는 화환도 보지 못하고, 문상객도 만나지 못한다. 그것은 오롯이 산 자들의 몫이다.

죽음은 망자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고요한 귀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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