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대출 오픈런, 총량규제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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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주를 앞둔 이들이 금리와 한도를 따져볼 겨를도 없이 대출 창구로 내달렸다. 어느 은행의 조건이 유리한지는 뒷전이었다. 오늘 신청하지 못하면 내일은 대출 문이 닫힐지 모른다는 공포가 앞섰다. 수억 원대 금융상품을 고르는 기준이 ‘접수 순서’가 된 현실. 최근 곳곳에서 빚어진 ‘잔금대출 오픈런’의 민낯이다.

정부가 올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기존 1.5%에서 3.0%로 상향했다. 금융권 대출 여력이 약 30조 원에서 60조 원으로 늘어나며 연초보다 30조 원가량의 숨통이 트였다. 당국은 이를 주택 공급과 청년 주거 안정, 실수요자 자금 애로 해소에 집중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실수요자의 숨통을 틔운 결정 자체는 환영할 만 하다. 분양계약을 마치고 입주를 기다리던 사람이 은행의 연간 한도가 찼다는 이유로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 문제는 4월에 내놓은 연간 목표가 불과 넉 달 만에 두 배로 뒤집혔다는 점이다.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가 현장 반발이 거세지자 다시 가속페달을 밟은 꼴이다.

두 배로 뒤집힌 목표, 거칠었던 규제

정책은 시장 여건에 따라 유연하게 바뀔 수 있다. 틀린 판단을 고집하는 것보다 빠른 궤도 수정이 낫다. 그러나 연중 목표치를 두 배나 손질해야 했다면 애초 총량규제의 설계가 얼마나 거칠었는지 짚어봐야 한다.

총량규제는 단순하고 강력하지만 둔감하다. 잔금대출과 전세대출, 주식 투자에 활용된 은행 신용대출은 목적이 다르지만 모두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에 반영된다. 정부가 일부 대출을 별도로 관리하고 정책금융에 예외를 두고 있어도 총량의 그물이 대출의 목적까지 완전히 가려내지는 못한다. 목표가 예상보다 빨리 차면 은행은 한도를 줄이고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수도꼭지를 잠근다.

그 피해는 오롯이 금융소비자의 몫이다. 시중 은행들이 총량을 맞추려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주택담보대출 가산금리는 7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소득과 담보 가치가 같아도 ‘어느 은행에 언제 줄을 섰는가’에 따라 대출 성패가 갈린다.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금융이 운과 순발력을 다투는 선착순 게임으로 변질된 것이다. 부채를 관리하겠다는 규제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박탈하고 금융 접근성의 불평등만 키웠다.

선착순 금융 끝낼 정교한 규칙을

가계부채 억제와 부동산 쏠림 완화는 거시건전성의 필수 과제다. 그러나 금융사별 총량을 일괄 통제하는 방식에 매몰돼선 안 된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심사를 통해 차주의 상환 능력을 일관되게 검증하되, 계약이 완료되고 실거주 목적이 뚜렷한 중도금·잔금·이주비 등 집단대출은 별도의 공급 경로를 분리 설계해야 한다.

당국은 월별·분기별 관리로 ‘대출 절벽’을 막겠다고 공언했으나 현장에선 여전히 오픈런이 반복됐다. 단순 목표 제시에 머물지 말고 금융사별 집행 속도와 입주 수요를 정밀하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총량 조정이 필요하다면 주택 거래량과 부채 증가율 등 사전 판단 기준과 변경 가이드라인을 투명하게 제시해야 시장 혼선을 막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총량 규제라는 울타리를 없애는 것도 고려해 볼 시점이다.

국민은 정부의 정책 신호를 믿고 주거와 자금 계획을 짠다. 규제의 방향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내일의 규칙을 예측할 수 있는 신뢰’다. 브레이크와 액셀을 동시에 밟는 자동차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승객만 불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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