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일 “하영 증조부 안상호, 친일파로 볼 수 있어…명단 제외는 별개 문제”

배우 하영의 증조부인 의사 안상호가 고종을 치료한 이력과 함께 일제강점기 행적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안상호의 이름은 정부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 관련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명단 등재 여부와 별개로 당시 친일단체 활동과 조선총독부 기관지 인터뷰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전문가의 설명이 나왔다.
박광일 역사 작가는 1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서 “대정실업친목회는 명확하게 친일단체”라며 “그 친일단체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친일파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안상호는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1902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에서 의사로 활동한 인물이다. 1906년 일본을 방문한 의친왕을 치료한 것을 계기로 황실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필요할 때 궁궐에 들어가 진료하는 촉탁의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1907년에는 종로에 진료소를 열어 국내 최초로 개업한 서양 의사라는 이름도 얻었다.
박 작가는 “1910년 이전까지의 모습을 보면 성공한 개화인으로서의 모습만 드러난다”면서도 이후 행적은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상호는 일제의 무단통치 시기인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 작가는 이 단체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융화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인을 일본에 동화시키고 총독의 통치에 순응하도록 유도한 친일단체였다고 설명했다.
1918년 12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실린 인터뷰도 친일 행적의 근거로 제시됐다. 당시 안상호의 가정은 ‘완전히 내지화한 가정’이자 ‘일선동화의 사례’로 소개됐다. 박 작가는 안상호가 인터뷰에서 “나는 일본인이다”, “매운 음식도 잘 먹지 못한다”고 말하고 자녀들에게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하게 했다고 전했다.
그는 “보통의 한국인들이 생각할 수 없는 당시의 상황”이라며 “상당한 친일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안상호는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되지 않았다. 박 작가는 명단에 오른 인물들이 ‘중요 친일파’라는 점을 짚으며 “여기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해서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은 면제를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안상호가 명단에서 제외된 배경으로는 구체적인 친일행위가 확인돼야 하고 친일단체의 간부급이어야 한다는 당시 등재 기준을 들었다. 대정친목회 평의원은 일반 회원에 가까웠고, 독립운동가를 고발하는 등의 구체적인 행위가 확인되지 않아 우선 등재 대상에서 빠졌다는 설명이다.
고종 독살 연루설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를 통해서 독살설의 가능성은 조금 희박하지 않을까 보고 있다”고 밝혔다. 고종이 승하한 1919년 1월 21일은 영친왕과 이방자의 혼인을 나흘 앞둔 시점이어서 일본이 고종을 독살해 얻을 실익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고종의 시신에서 검은 반점 등이 발견됐다는 윤치호 일기의 내용은 약 1년 7개월 뒤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며, 의친왕이 1919년 이후에도 안상호에게 치료받았다는 점도 연루 가능성을 낮추는 근거로 제시했다.
박 작가는 친일행위의 책임을 후손에게 그대로 물을 수는 없지만, 과거를 인식하고 성찰하는 문제는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죄에 따라 벌을 받는 것”과 후손이나 공동체가 역사적 사실을 돌아보는 “책임의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며 “후손들에게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자기 가문을 살펴볼 수 있는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