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본 20% 룰'의 역설…옥석가리기 거세진다 [주택공급 또다른 병목 PF] ②

기사 듣기
00:00 / 00:00

자기자본 기준 내년 5%부터 단계 상향
위험가중치·충당금·대출한도 동시 강화
중소 시행사·수도권 외곽 자금조달 우려

▲그래픽 = 신미영 기자

내년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조달 문턱이 높아지면서 자금줄을 맡아 온 증권사와 저축은행, 캐피탈 등 비은행권의 투자 여력도 함께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권의 사업장 옥석 가리기가 거세지면서 중소 시행사와 수도권 외곽 사업장이 먼저 밀린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내년부터 PF 사업비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금융회사의 위험가중치와 충당금, 일부 비은행권의 대출 취급 기준에 반영한다.

자기자본 요건은 내년 5%에서 시작해 2028년 10%, 2029년 15%, 2030년 20%로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이른바 '자기자본 20% 룰'로 자기자본이 부족한 사업장일수록 금융회사의 자본과 충당금 부담이 커지고, 일부 업권에서는 대출 자체가 제한된다.

문제는 국내 PF의 현실적인 자본구조와 규제 목표 사이의 간극이다. 그동안 시행사는 총사업비의 5~10% 안팎만 자기자본으로 넣은 뒤 고금리 브릿지론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본PF로 갈아타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약 800개 PF 사업장을 분석한 결과 자기자본비율은 평균 3% 수준이었다. 2030년 목표인 20%와 17%포인트(p) 차이가 난다.

규제가 시작되면 금융회사들의 투자 여력은 다방면으로 줄어든다. 우선 은행과 금융사는 자기자본비율과 분양률이 낮을수록 높은 위험가중치(최고 150%)를 적용받는다. 위험가중자산이 늘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비율이 낮아진다. 같은 규모의 PF 대출에도 더 많은 자기자본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같더라도 자본을 많이 소모하는 저자본 사업장에 돈을 댈 유인이 줄어든다. 자기자본이 낮은 사업장에 대한 충당금 부담도 커진다.

저축은행과 캐피탈, 상호금융, 새마을금고에는 자기자본 기준에 따른 대출 취급 제한까지 도입된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금융사가 투자 의사가 있더라도 대출을 내주기 어려워진다. 다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한국주택금융공사(HF) 보증을 받은 사업장, 실질적 위험이 낮다고 평가되는 사업장 등은 예외로 인정될 수 있다.

증권사는 순자본비율(NCR) 규제와 부동산 투자한도 부담을 동시에 받는다. 금융당국은 NCR 위험값을 대출·채무보증 등 투자 형식이 아닌 브릿지론·본PF 여부와 담보인정비율(LTV)에 따라 차등 적용한다. 착공 전 브릿지론이나 담보가 부족한 사업일수록 증권사가 반영해야 하는 위험액이 커진다.

대출과 펀드, 채무보증을 합친 증권사의 부동산 투자금액도 2029년까지 자기자본 100% 이내로 낮춰야 한다. 이미 부동산 익스포저가 많은 증권사는 신규 사업의 사업성이 양호하더라도 한도 때문에 추가 자금을 공급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 증권사 IB 담당 관계자는 "본PF 셀다운 과정에서 미매각 물량을 증권사가 떠안으면 NCR이 낮아진다"며 "자본 부담이 커질수록 신규 PF를 취급할 때 자기자본과 시공사 신용보강 조건을 더 엄격하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부실 PF를 정리하는 동시에 정상 사업장에는 자금을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자기자본이 부족하지만 인허가와 수요를 확보한 중간 단계 사업장까지 강화된 심사에서 밀릴 가능성은 남는다. 추가 자본과 시공사 보증을 확보하기 어려운 중소 시행사나 수도권 외곽 사업장이 대표적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저자본·고차입 PF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방향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면서도 "민간 주택 착공을 늘려야 하는 시점과 금융회사의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는 시점이 겹친다. 대출을 대신할 지분자본 시장이 자리 잡기 전에 금융권의 선별이 먼저 강화되면 지방과 중소 시행사의 사업을 중심으로 주택 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