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진입이 현실화하면서 금융과 가상자산업을 갈라놓던 이른바 '금가분리'의 벽이 낮아졌다. 경쟁의 축이 가상자산 거래 수수료 점유율 경쟁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증권(STO), 실물연계자산(RWA)의 발행·유통망으로 옮겨가면서 거래소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금융그룹들이 펀드와 블록체인 인프라 투자 등으로 우회 투자하는 전략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22일 한국투자증권과 OKX벤처스의 코인원 대주주 변경 신고를 수리했다. 두 회사는 각각 지분 약 20%를 확보했다. 미래에셋그룹은 비금융 계열사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코빗 지분 97.15%를 인수했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에는 하나은행이 지분 6.55%를 확보하기로 했고, 한화투자증권도 추가 투자를 통해 지분율을 9.84%로 높이기로 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증권·삼성SDS·삼성카드도 두나무 지분 4%를 취득하기로 했다.
지분 제휴가 빠르게 일어나면서 금융회사들의 원화 거래소 지분 투자에 대한 선택지가 극도로 좁아졌다. 국내 5대 원화마켓 거래소 가운데 업비트·코인원·코빗은 금융·디지털자산 기업과 지분 관계를 이미 맺은 상태다. 고팍스는 바이낸스가 최대주주다. 금융·플랫폼 기업과 신규 지분 제휴를 맺지 않은 대형 원화마켓 거래소는 빗썸이 유일하다. 금융회사들의 투자 지분 확보 선택지가 별로 없는 셈이다.
원화 거래소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국내 금융그룹은 펀드와 기술 제휴 등 우회 전략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KB금융은 1000억원 규모의 ‘KB AX디지털자산 펀드’를 설립했다. KB국민은행·KB증권 등 주요 계열사가 출자자로 참여하고 KB인베스트먼트가 운용을 맡아 디지털자산과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특정 거래소에 베팅하기보다 생태계 전반의 유망 기업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신한금융은 해외 블록체인 인프라를 택했다. 신한투자증권과 신한벤처투자는 27일 기관용 블록체인 캔톤 네트워크 운영사 디지털에셋의 3억5500만달러 규모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다. 지난달 신한투자증권·신한자산운용이 디지털에셋과 토큰화 분야 업무협약을 맺은 데 이어 직접 투자로 협력 범위를 넓혔다.
우리은행은 글로벌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 문페이와 원화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조성을 위한 협력에 나섰다. NH농협은행도 종합결제기업 NHN KCP와 스테이블코인 결제·정산 구조를 공동 설계하고 있다.
다만 가상자산 2단계 입법 과정에서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이 논의되는 점은 변수다. 금융권의 다음 승부는 거래소 지분 확보 자체보다 고객과 결제·지갑 인프라를 스테이블코인·STO·RWA 등 제도권 디지털 금융 서비스로 얼마나 빠르게 연결하느냐에서 갈릴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거래소 지분을 얼마나 확보했느냐보다 규제가 정비된 뒤 어떤 서비스를 실제로 붙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스테이블코인과 STO, 수탁 등에서 고객 접점을 먼저 만든 금융사가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