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 가격이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주가에 반영하기까지는 늘 '시차'가 존재한다. 금융당국이 상장폐지 절차 단축과 시가총액·매출액 등 정량적 퇴출 기준 강화를 골자로 한 퇴출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인 가운데, 단편적인 잣대만으로 옥석 구분 없이 칼을 댄다면 성장 잠재력을 지닌 기업까지 조기 퇴출당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한계기업을 적시에 정리해 증시 건전성을 높이려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새로 적용되는 퇴출 기준이 글로벌 주요국 증시와 비교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평가한다.
정지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부실기업의 장기 잔류를 줄임으로써 투자자 피해와 불공정거래 악용 가능성을 낮추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면서도 “다만 이번 정량 기준은 글로벌 주요국 대비 상당히 엄격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정 연구원은 이어 “사후 회복에 허용되는 개선기간이 대폭 축소되고, 개선 인정에도 장기간의 연속적인 가격 회복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신속하고 강도 높은 퇴출 기준”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이러한 '속전속결'식 퇴출 기준이 코스닥의 핵심 축인 기술특례 기업들의 성장 생태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특례 기업은 초기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인해 단기 매출이나 시가총액이 급감하기 쉬운데, 유예기간마저 줄어들면 성과를 내기 전에 퇴출 위기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코스닥 시장을 이끄는 대표 대장주들 역시 긴 R&D 기간과 업황 침체 속에서 오랫동안 시장의 외면을 받으며 극심한 저평가 터널을 지나온 전력이 있다.
현재 코스닥 시가총액 1위 종목인 알테오젠이 대표적인 예다. 2014년 12월 상장한 알테오젠은 과거 바이오 업계 전반의 침체기와 맞물려 주가가 2800원대까지 추락하는 등 시장에서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상장 후 5년이 지날 때까지 주가는 1만원 선을 넘지 못했고, 2024년 초까지도 시장의 평가가 제한되며 주가는 10만원 이하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속적인 R&D 투자 끝에 대규모 기술수출 결실을 맺자 기업가치는 폭발적으로 뛰어올랐다. 지난해 최고 56만9000원까지 급등한 알테오젠의 이날 종가는 28만200원으로, 시총 규모는 15조1381억원에 달한다.
코스닥 시총 19위 종목 펩트론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2015년 7월 상장 이후 2022년까지 수년간 장기 R&D에 따른 누적 적자로 인해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기술력을 입증하고 2023년부터 대규모 기술이전 계약이 잇따르면서 판도가 뒤바뀌었다. 2023년 10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주가가 약 372% 폭등했다. 이날 기준 펩트론의 시가총액은 3조1548억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획일적인 단기 시총 및 매출액 기준만으로 퇴출을 강행하기보다,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입체적인 잣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정 연구원은 "해외 주요 시장 역시 단순 수치 자르기에 그치지 않고 개선계획 제출 요구, 충분한 개선기간 부여, 질적 심사 등을 통해 상장 유지 적격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며 "국내 제도 역시 정량 기준 강화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심사 절차의 일관성과 공시정보의 충실성을 높이고 투자자 보호장치를 꾸준히 보완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