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과나 안경원에서 시력검사를 받아본 적 있다면 한 번쯤 마주했을 풍경이 있습니다. 검사 기기 너머로 펼쳐진 너른 초원, 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작은 집 한 채. 가본 곳도 아니고 실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데 이상하리만큼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와 비슷한 영상이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는 잔잔한 물결만 번지고, 형광등이 켜진 복도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이어집니다. 구름 위에는 낡은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고, 문을 열면 풀밭이 펼쳐지기도 하죠.
기분은 묘합니다. 분명 처음 보는 공간인데 오래전 꿈에서 스쳐 간 것 같고, 포근한데도 어딘가 불안합니다. 별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데 눈을 떼기 어렵죠. 댓글에도 "어릴 때 꾼 꿈 같다",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그립다", "편안하면서도 무섭다"는 반응이 이어집니다.
이 낯선 취향에는 이름도 있습니다. 꿈을 뜻하는 '드림(Dream)'과 특정한 감성·스타일을 의미하는 '코어(Core)'를 합친 '드림코어(Dreamcore)'입니다.

드림코어를 규정하는 정확한 정의는 없습니다. 등장 시기와 기원도 명확하지 않고, 네티즌들이 각자의 이미지와 영상을 공유하며 형성한 인터넷 미학인 만큼 무엇을 드림코어로 볼 것인지도 사람마다 다른데요. 일반적으로는 익숙하면서도 몽환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요소를 통해 아름다움과 편안함, 향수, 일말의 위화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콘텐츠를 가리킵니다.
이미지나 영상의 경우 사람이 사라진 학교와 쇼핑몰, 텅 빈 수영장,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처럼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공간이 곧잘 등장합니다. 여기에 구름이나 무지개, 꽃, 오래된 장난감처럼 꿈을 연상시키는 요소를 현실의 질서와 맞지 않게 배치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사진과 영상은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나 비디오테이프(VHS)로 촬영한 것처럼 흐릿하거나 색이 바랜 경우가 많습니다.
드림코어에서 자주 활용하는 공간은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입니다. 늘 학생으로 북적이던 학교가 한밤중에 비어 있거나 영업이 끝난 쇼핑몰에 전등만 켜져 있을 때 익숙한 장소는 순식간에 낯선 풍경으로 바뀔 수 있는데요. 이처럼 친숙한 공간이지만 평상시 인식과는 다른 모습으로 괴리감이나 위화감을 자아내는 공간이 리미널 스페이스로 통합니다.
정확한 기원 역시 확인되지 않았지만, 드림코어는 온라인에서 2010년대 후반께 등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2019년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 '백룸(The Backrooms)'이 인기를 끌고, 2020~2021년 틱톡을 중심으로 리미널 스페이스 콘텐츠가 확산하면서 드림코어도 하나의 서브컬처로 자리를 잡았죠.

드림코어는 여전히 일부 이용자를 중심으로 소비되는 비주류 문화지만, 온라인에서 형성된 관심은 작지 않습니다. 2023년 영국 더 선은 틱톡에서 'dreamcore' 해시태그가 달린 콘텐츠가 누적 조회 수 57억 회를 기록했다고 보도한 바 있죠.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의 아파트와 교실, 상점 등 어린 시절의 풍경을 재현한 '차이니즈 드림코어(Chinese Dreamcore)'가 조명받고 있습니다. 중국 숏폼 플랫폼 더우인에서 관련 콘텐츠 조회 수는 25억 회를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죠.
차이니즈 드림코어 영상에는 목재 가구가 놓인 옛 아파트와 푸른빛이 감도는 창문, 초기 인터넷 메신저 화면 등 당시의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드디어 깨어났네. 오늘은 2006년의 평범한 주말이야", "여기는 2008년의 베이징이야" 같은 문구도 함께 나오는데요. 드림코어가 막연하고 보편적인 꿈의 풍경에서 벗어나 지역과 세대가 공유하는 구체적인 기억으로 확장된 모습입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도 눈길을 끕니다. 과거에는 온라인에서 관련 이미지를 수집하거나 여러 사진을 합성해 공유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생성형 AI가 제작 도구로 합류했는데요. 전문적인 촬영이나 그래픽 기술이 없어도 몇 줄의 프롬프트만으로 현실에 없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에 상상 속 공간을 이미지로 만들고, 다시 영상 생성 AI로 움직임을 더해 틱톡과 유튜브 등 개인 채널에 공개하는 창작자도 늘고 있습니다.
드림코어와 맞닿은 미학은 K팝 뮤직비디오에서도 발견됩니다. 대표적으로 뉴진스(NewJeans)의 '디토(Ditto)'는 인적이 드문 겨울 학교의 복도와 교실, 체육관을 오래된 캠코더 화면처럼 담아냈는데요. 익숙한 학창 시절의 풍경에 멤버들이 실제 친구인지 기억 속 존재인지 알 수 없는 서사를 더하면서 아련함과 위화감을 동시에 자아냈습니다. 공식적으로 드림코어를 표방한 작품은 아니지만, 흐릿한 유년기의 기억과 텅 빈 일상 공간을 결합하며 관심을 끈 바 있습니다. 두 편의 뮤직비디오는 각각 6430만 회, 264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 중입니다.
리미널 스페이스 문화의 확장 가능성은 영화 '백룸'의 흥행에서도 확인됐습니다. 백룸은 드림코어와 동일한 장르는 아니지만, 사람이 사라진 익숙한 공간과 끝없이 이어지는 방, 현실이 미세하게 어긋난 데서 오는 위화감 등을 공유하죠.
'백룸'은 2019년 미국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노란색 방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네티즌들이 공간의 규칙과 괴생명체, 새로운 방을 자유롭게 덧붙이면서 하나의 공동 창작형 인터넷 괴담으로 인기를 끌었는데요. 당시 16세였던 케인 파슨스는 2022년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단편 영상 '더 백룸(The Backrooms: Found Footage)'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 '케인 픽셀스(Kane Pixels)'에 공개했습니다. 해당 영상은 23일 기준 조회 수 9100만 회를 넘어설 만큼 큰 관심을 얻었습니다.
파슨스는 여러 편의 영상을 추가해 백룸의 세계관을 넓혔고, 온라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극장 스크린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직접 연출한 장편영화 '백룸'은 약 1000만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서 3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는데요. 제작사 A24의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올라섰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처음 보는 공간에서 그리움을 느끼는 걸까요.
드림코어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감정은 '아네모이아(Anemoia)'입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시대나 장소를 향해 느끼는 향수를 뜻하는데요. 정식 심리학 용어라기보다는 작가 존 케닉이 제시한 표현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그리워하게 하는 드림코어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로 널리 쓰입니다.
드림코어에 등장하는 풍경은 완전히 낯설지도, 그렇다고 특정한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학교 복도와 놀이터, 쇼핑몰, 오래된 집처럼 누구나 한 번쯤 접한 공간을 활용하되 사람을 지우거나 현실에 없는 사물을 더하는데요. 보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기억의 빈자리를 장면에 맞춰 채우면서 영상 속 공간을 개인적인 추억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흐릿한 화질과 로파이 음악도 이런 감정을 키웁니다. 오래된 사진과 비디오를 연상시키는 화면은 명확한 시간과 장소를 감추고, 반복되는 음악은 꿈이나 기억을 더듬는 듯한 분위기를 만드는데요.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같은 영상을 보고도 각자가 떠올리는 장면과 감정은 달라집니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에게 과거는 직접 경험한 기억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반복적으로 접한 이미지로도 구성됩니다. 태어나기 전 유행한 음악을 듣고, 사용해본 적 없는 필름 카메라의 색감을 따라 하며, 어린 시절의 인터넷 화면을 다시 구현하는 식인데요. 차이니즈 드림코어가 2000년대 초반의 아파트와 메신저, 상점 풍경을 소환한 것도 개인의 추억과 세대가 공유하는 디지털 기억이 맞물린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의 불확실성도 드림코어의 매력을 키우는 요인으로 거론됩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치열한 경쟁, 불투명한 미래에서 잠시 벗어나 시간의 흐름과 현실의 규칙이 작동하지 않는 공간에 머무는 건 일종의 정서적 피난처가 될 수 있는데요. 난징 동남대학교의 미디어 전문가 한샤오창 부교수는 NYT에 "드림코어는 일종의 소망 충족 역할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이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았다고 느끼면서, 미래가 무한한 가능성으로 보였던 시절의 감정을 되살린다는 설명이죠.
다만 생성형 AI가 드림코어 제작의 문턱을 낮춘 만큼 새로운 고민도 생겼습니다. 비슷한 프롬프트와 학습 자료를 이용하면서 끝없는 복도와 텅 빈 수영장, 구름 위의 건물 등 유사한 결과물이 반복될 수 있는데요. AI 학습에 활용된 원본 이미지의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수많은 네티즌이 함께 키운 인터넷 문화를 특정 기업이나 창작자가 어디까지 소유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도 불거질 수 있죠.
드림코어가 당장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생성형 AI로 제작 문턱이 낮아지고 영화와 K팝 등 대중문화에서도 비슷한 미학이 활용되면서 대중이 이 미학을 접할 기회는 부쩍 늘고 있는데요. 온라인의 비주류 취향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주목되는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