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기관 1.2조 순매도

미국 빅테크 AI 인프라 투자 둔화 우려가 재부각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반 하락했다. 중국발 저비용·고성능 AI 모델 급습에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의 자본지출 감소가 메모리 반도체 수요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투자심리를 짓누른 것으로 보인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4.31% 하락한 24만4000원에, SK하이닉스는 4.23% 하락한 176만4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두 종목 모두 장중 큰 변동성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장중 25만7500원까지 올랐다가 24만원까지 밀렸고, SK하이닉스 역시 최고 189만2000원에서 최저 173만6000원까지 떨어지는 등 출렁였다.
수급 측면에서는 기관의 매도세가 하락을 주도했다. 삼성전자는 개인과 외국인이 각각 544억원, 2750억원을 순매수했으나 기관이 350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SK하이닉스 역시 개인 2967억원과 외국인 6111억원의 매수세에도 불구하고 기관이 9335억원을 쏟아내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반도체 업종 전체가 전 거래일 대비 4.24% 하락하며 전반적인 약세를 면치 못했다. 전체 171개 종목 중 상승은 8곳, 보합은 4곳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159개 종목은 모두 하락 마감했다.
이번 주가 흔들림의 발단은 중국 스타트업 문샷AI가 이달 17일 공개한 차세대 오픈소스 거대언어모델(LLM) '키미(Kimi) K3'다. 키미 K3는 2조8000억개 매개변수를 갖춘 세계 최초 '3조 파라미터급' 오픈소스 모델이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미국 최상위 AI 모델에 필적하는 성능을 갖췄으면서도 이용 비용은 최고 70%가량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AI 평가 기관 '아티피셜 어낼리시스'에 따르면 키미 K3의 지능 지표는 57점으로 세계 4위다. 앤트로픽 '클로드 페이블5'(60점)와 오픈AI 'GPT-5.6 솔 맥스'(59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스페이스X '그록4.5'(54점) 및 구글·메타의 주요 모델을 상회하는 성적이다.
시장에서는 '저렴한 고성능 AI' 등장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무제한적인 데이터센터 증설과 반도체 구매 명분을 흔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하이퍼스케일러 자본 지출이 10% 축소될 경우,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율도 기존 전망 대비 최대 15%포인트가량 둔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여파로 앞서 뉴욕증시에서도 엔비디아(-2.21%),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5.60%), 램리서치(-2.40%) 등 핵심 반도체주가 일제히 급락했고,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1.63%)는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하며 기술적 약세장에 진입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 휴장 동안 미국 증시가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약세를 보였다"며 "키미 K3가 최상위 모델에 근접한 성능을 내면서 하이퍼스케일러의 투자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대됐고, 이것이 AI 인프라 및 반도체 수요 둔화 우려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키옥시아 미국 특허소송 패소에 따른 3000억원대 배상 명령과 문샷의 홍콩 증시 기업공개(IPO) 추진 소식 등도 투자심리를 악화시켰다"고 덧붙였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중국발 쇼크로 인한 피크아웃(정점 통과) 공포가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중국 AI 모델의 추격을 반도체·하드웨어 밸류체인 전체의 위축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오해라는 지적이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키미 K3 본질은 개방형 모델이 폐쇄형 프론티어 모델을 추격한 것으로, 빅테크 플랫폼 성장성 우려는 부각될 수 있다"면서도 "이를 AI 하드웨어 투자 전체의 위축으로 보는 것은 착각"이라고 분석했다.
황 연구원은 "AI 설비투자 주체가 빅테크 하이퍼스케일러에서 일반 기업 및 추론 서비스 사업자(ISP)로 확대되는 추세"라며 "고성능 오픈소스 모델이 늘어날수록 이를 구동하기 위한 인프라와 GPU, 메모리 반도체 수요 상방은 오히려 더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미 증시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와 주요 종목들이 하락 마감하긴 했으나, 장중 저점 대비 낙폭을 크게 줄이거나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주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웨스턴 디지털(2.23%), 시게이트 테크놀로지(5.66%), 델 테크놀로지스(1.27%) 등 스토리지 및 테크 종목들은 오히려 상승 마감했다"며 "장 초반 심리적 악재가 마감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경민 연구원 역시 "메모리 시장의 견조한 수요와 공급자 우위 구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