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계 관계자가 건넨 이 한마디에는 기업의 투자 원칙이 담겨있다. 당위가 아니라 경쟁력을 보고 움직인다는 의미다.
정부가 추진하는 800조 원 규모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2030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 반도체 팹(Fab) 건설 기간을 대폭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속도전의 근거로 자주 거론되는 사례가 일본 구마모토 TSMC 공장이다. 2022년 착공해 22개월 만인 2024년 2월 완공됐다.
구마모토의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TSMC가 오기 전부터 규슈에는 반도체 산업이 수십 년간 축적돼 있었다. 소니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과 웨이퍼·장비·검사 업체가 집적돼 있었고 풍부한 지하수와 안정적인 전력, 숙련 인력도 갖추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기업이 투자할 이유가 충분한 곳에 보조금과 세제 혜택, 신속한 인허가를 더했다. 22개월은 탄탄한 기반 위에서 가능했던 결과였다.
호남 클러스터를 둘러싸고 전력과 용수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문제는 사람이다. 연구개발 인력은 공장 하나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배우자의 일자리와 자녀 교육, 의료·교통 환경까지 함께 따진다. 업계에서 인재 확보의 현실적인 마지노선이 용인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공장이 들어선다고 협력사와 공급망이 저절로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구마모토도 TSMC를 유치했다고 곧바로 산업 생태계가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TSMC 공급망 투자 가운데 현지 기업이 차지한 비중은 15%에 그쳤다. 일본은 뒤늦게 사이언스파크 조성과 산학 협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공장을 빨리 지은 것과 클러스터를 완성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방증이다.
문제는 지역이 아니라 기반이다. 중요한 것은 전력과 용수, 인재와 협력사 등 기업이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건을 먼저 갖추는 일이다. 반도체 팹은 한 번 지으면 수십 년을 운영하는 시설이다. 클러스터의 성패도 착공 시기가 아니라 그 기반을 얼마나 탄탄하게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가 구마모토에서 배워야 할 것은 22개월이라는 기록이 아니라 기업이 먼저 선택한 환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