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결은 합치는 데 있지 않았다. 잇는 데 있었다. 간사이의 도시들은 2010년, 도쿄 일극 체제에 맞서 광역연합을 만들었다. 도시를 하나로 포개는 대신, 방재와 의료와 관광과 산업처럼 함께 할 때 나은 일만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교토는 학문을, 오사카는 상업을, 고베는 항만을 맡았다. 행정 경계는 그대로 둔 채, 필요한 자리에서만 손을 잡는다. 합치지 않고도, 하나처럼 돌아간다.
그 풍경 위로 한국의 소식이 겹쳐졌다. 전남과 광주가 316만 규모의 통합을 확정했다. 부산·울산·경남도, 대구·경북도, 충청권도 줄줄이 주저앉은 가운데, 가장 늦게 나선 전남·광주가 균형발전의 마지막 불씨를 살린 것이다. 분명한 진전이다. 다만 이들이 택한 길은 간사이식 '연합'이 아니다. 두 살림을 하나로 포개는 '통합'이다. 더 깊이 합치는 만큼, 더 무거운 질문이 따라붙는다.
그 질문의 답을, 우리는 이미 한 번 받아 보았다. 불과 얼마 전, 부산·울산·경남이 특별연합을 만들었다. 그러나 출범 1년 만에 세 의회가 차례로 폐지를 의결하며 깨졌다. 필자는 그때 세 광역의회의 회의록을 모두 들여다본 적이 있다. 거기서 거듭 마주친 단어는 뜻밖에도 '소외'와 '예속'이었다. 서부경남은 부산에 자원을 빼앗길까 두려워했고, 울산은 부산으로 빨려 들어가 제 위상마저 잃을까 걱정했다. 합친다는 말이, 약한 쪽에게는 빨대처럼 들렸던 것이다. 부울경은 그 두려움 앞에서, 헐겁게 잇는 연합조차 끝내 넘지 못했다. 하물며 살을 맞대는 통합은 어떻겠는가.
두려움에는 근거가 있었다. 필자가 비수도권 도시들의 데이터를 들여다보니, 여럿이 묶였을 때 그 한복판에 선 거점이 도리어 주변의 활력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힘은 본래 한곳으로 쏠리려는 성질이 있다. 통합이 그 쏠림을 방치한다면, 약한 곳은 끝내 그늘에 잠기고 만다. 수도권이 비수도권에 했던 일을, 광역권이 그 안에서 고스란히 되풀이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통합의 진짜 일은 합치는 데 있지 않다. 나누는 데 있다. 간사이가 보여 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교토와 오사카만이 아니었다. 항구도시 고베도, 그 너머 히메지의 옛 성도 한 권역으로 이어져 있었다. 저마다 다른 빛을 내면서도 끊기지 않았다. 합쳤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몫을 분명히 나눴기 때문이다. 통합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곳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대신, 저마다의 강점을 살려 역할을 나눌 때, 통합은 빨대가 아니라 보탬이 된다. 부울경이 깨진 것은, 약한 쪽의 자리를 처음부터 그려 넣지 못해서였다. 이미 합치기로 한 이상, 그 자리를 비워 둔 채 출발해서는 안 된다.
물론 간사이도 정답은 아니다. 연합 16년이 지나도록, 도쿄로의 쏠림은 끝내 멈추지 않았다. 잇는 것조차 만병통치가 아닌데, 합치는 것 하나로 다 풀리리라 믿는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한 기대다.
교토에서 오사카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줄곧 같은 생각을 했다. 합쳐지지 않았는데도, 이토록 매끄럽게 이어지는구나. 이어짐의 비결은 합침이 아니라, 각자의 몫을 분명히 한 데 있었다. 전남·광주의 진짜 시험도 합친 오늘이 아니라, 나눌 내일에 있다. 합쳤느냐가 아니라, 합친 뒤에 무엇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길을 가른다. 통합은 도착점이 아니다. 거기서부터가 출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