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들상품 전락한 케이블TV 답습해
경쟁력 잃은 방송시장 고사 우려돼

지난달 미디어 업계에서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정부가 심사를 거쳐 승인한 종합편성채널 중 하나인 JTBC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법률적으로 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채 규모나 전통 미디어의 추락세를 감안하면 사실상 파산했다고 해도 될 듯하다.
더구나 JTBC는 2010년 승인받은 종합편성채널 중 유일하게 ‘진짜(?) 종합편성’을 하려고 노력했던 방송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조금 과장하면 지난 10년간 JTBC는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으로 CJ계열 채널들과 더불어 한류 콘텐츠의 산실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JTBC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JTBC가 파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정 정치 성향의 시청자를 지향하는 편향된 뉴스와 다수의 대중을 확보해야 하는 오락 프로그램이 엇박자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망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JTBC의 몰락은 열악한 한국 방송시장에서 과도한 투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수십 년간의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셈이다. 결국 JTBC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1970년대 한국 방송시장을 주름잡았던 ‘TBC(동양방송) 부활’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강압적으로 빼앗겼던 ‘TBC의 추억’이 과잉 투자로 이어져 결국 몰락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이번 JTBC 몰락 이후 한국 방송시장은 어떤 모습이 될까. 아마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공세에 밀려 크게 위축된 방송사 연쇄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물론 꼭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방송역사를 보면, 죽지 않고 생존하는이른바 ‘골골 80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스, 시사평론 그리고 큰 비용이 들지 않는 ‘신변잡기 잡담’ 프로그램으로 다른 종합편성채널들은 급추락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적지만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일부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적게 쓰고 적게 버는’ 편성 전략이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생존전략의 역사는 깊다. 1995년 케이블TV 출범 당시 허가받은 ‘30개 채널’의 상당수를 대기업들이 차지하였다. 그들은 오랜 기간 익숙해 있던 지상파방송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전속 탤런트도 모집하고 전속합창단, 무용단까지 두기도 했다. 하지만 0.1%도 되지 않은 시청률을 가지고 밑 빠진 독에 투자하던 그 채널들은 외환위기와 함께 무더기로 퇴출되었다.
이후 케이블TV는 지상파방송 재송신과 녹화 방송, 저가 외국 프로그램으로 채우는 채널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케이블TV는 전송망을 이용한 인터넷 서비스의 번들 상품으로 전락했다. 뉴미디어 도입으로 방송영상산업 활성화라는 거창한 정책 목표는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물론 CJ 계열 일부 채널이 각종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작에 투자했지만, 지금까지도 고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콘텐츠 경쟁력을 잃어버린 케이블TV는 IPTV에게 주도권을 내주었다. 그렇다고 IPTV가 콘텐츠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생리적으로 전송 내용에 별 관심이 없는 통신사업자 속성상 콘텐츠 투자는 원천적으로 기대하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유료방송 후반부 번호대에는 ‘태조 왕건’이나 ‘제3공화국’ 같은 전설의 레전드(?) 프로그램들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굳건히 생존하고 있는 채널들이 적지 않다. JTBC 파산에 대해 정치적 입장에 따라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방송시장 활성화와 콘텐츠 산업 측면에서 보면 우울한 저가 시장구조가 더 심화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