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한 달.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는 평일 오후에도 여전히 시끌했다. 태극기와 손팻말을 든 참가자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구호를 외쳤고, 자원봉사자들은 얼음물과 간식, 컵라면을 나르며 장기화된 집회 현장을 지켰다.
반면 일부 청년 참가자들이 자리를 옮겨 집회를 이어갔던 홍대입구역과 신촌 일대는 평일 오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불과 열흘 남짓 전만 해도 재선거를 요구하는 참가자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던 거리였지만, 이날 거리에서 집회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다만 평일의 고요함이 사태의 종료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근 상인들은 “평일에는 조용하지만 주말에는 다시 사람들이 몰린다”고 입을 모았다. 잠실의 장기 농성과 홍대·신촌의 주말 집회가 병행되면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시작된 재선거 요구는 공간과 세대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평일에는 조용해요. 집회도 거의 안 하는 것 같고요.”
같은날 서울 마포구 신촌역 3번 출구 앞. 인근 서점 직원 남모 씨(31)는 창밖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이날로 27일째를 맞았지만, 평일 오후의 신촌과 홍대는 여느 대학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촌역 3번 출구를 나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분주한 일상이었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카페를 찾았고, 직장인들은 점심을 마친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가 벤치에는 더위를 식히는 시민들이 앉아 있었고, 약속 장소를 찾는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보며 골목을 지나갔다.
집회가 열렸던 장소를 따라 천천히 걸었지만 ‘재선거’라고 적힌 피켓이나 현수막은 보이지 않았다. 태극기를 든 참가자도, 확성기를 든 사회자도 없었다. 집회가 열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지나간다면 평범한 대학가의 오후라고 생각할 만큼 조용한 풍경이었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같은 거리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지난달 20일 홍대입구역 인근에서는 청년단체가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당시 잠실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이어지던 집회에 참여했던 일부 2030 참가자들이 홍대로 자리를 옮겨 ‘부정선거’보다 ‘재선거’ 요구를 전면에 내세웠다. 태극기를 든 청년들이 거리를 메웠고, “재선거”를 외치는 구호가 홍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이날의 홍대와 신촌은 집회가 한창이던 시기와 대조적인 풍경을 보였다. 거리는 다시 학생들의 일상과 상인들의 영업,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상인들의 기억 속에는 주말마다 반복되는 집회 풍경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남 씨가 기억하는 주말의 풍경은 평일과 달랐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거칠고 투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락 음악도 나오고 재즈 음악 같은 것도 들렸다”고 말했다. 이어 “투쟁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다 같이 즐기면서 참여하는 분위기에 가까웠던 것 같다”고 했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도 다양했다고 한다. 남 씨는 “20~30대 젊은 층과 60대 이상 어르신들이 많았다”며 “중간 연령층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세대 간 분위기도 인상 깊었다고 했다. “오히려 나이가 많은 분들이 젊은 사람들을 챙겨주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이는 올림픽공원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문구와도 맞닿아 있다. 잠실 집회 현장 곳곳에는 “고맙다 젊은이들”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20·30대 참가자가 적지 않다는 점을 의식한 문구였다. 장기 농성의 중심이 잠실에 남아 있는 가운데, 청년층 일부는 홍대와 신촌 같은 젊은 세대의 생활권으로 이동해 주말 집회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같은 장소를 두고 기억은 조금씩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자리였고, 누군가에게는 음악이 흐르는 축제 같은 공간이었다. 반대로 인근 상인에게는 손님과 대화하기 어려울 정도의 소음으로 기억됐다.
집회가 도심 한복판으로 옮겨오면서 나타나는 긴장도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참가자들은 “재선거”를 외치며 자신들의 참정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지만, 상인과 시민들은 일상 공간이 반복적으로 정치적 의사 표현의 무대가 되는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 평일에는 조용하고 주말에는 다시 북적이는 홍대의 풍경은 이 사태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이 아니라, 시간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장에서는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라는 구호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낮 시간 무더위 속에서도 태극기를 흔들었고, 중간중간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성조기를 든 참가자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출입구 주변에는 손팻말을 든 참가자들이 몰려 있었고, 현장을 촬영하는 유튜버들도 적지 않았다.
현장은 단순한 항의 집회를 넘어 장기 농성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얼음물을 나눠주는 사람, 분리수거를 돕는 사람, 의료 지원을 맡은 사람, 이동 동선을 안내하는 사람이 따로 움직였다. 물과 간식이 계속 제공됐지만 바닥에서 쓰레기를 찾기는 어려웠다. 참가자들이 컵과 비닐,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해 버렸고,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다시 정리했다.

잠실 현장이 장기 농성의 거점이라면, 홍대와 신촌은 청년층이 결집하는 주말 집회의 무대가 되고 있다. 올림픽공원에서는 ‘부정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같은 구호가 전면에 나오지만, 홍대에서는 ‘재선거’ 요구가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부각됐다. 같은 사태에서 출발했지만, 장소에 따라 메시지와 분위기가 달라진 셈이다.
평일 오후의 홍대와 신촌은 다시 평범한 대학가의 풍경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이 거리는 다시 재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시작된 논란은 잠실의 농성장에만 머물지 않고, 청년들이 모이는 도심 거리로 번져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