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급등기 이후 약 6년 만의 역전

서울에 사는 직장인 A 씨는 보증금 5억원에 살고 있는 아파트를 13억원에 매수하겠냐는 집주인의 제안을 받고 고민 중이다. 최고 실거래가 12억6000만원보다 비싸 선뜻 매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지만, 내년 2월 전세계약 만기를 앞둔 집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면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직장인 B 씨도 내 집 마련 여부를 두고 고심하는 중이다. 7월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과 함께 대출 규제가 더 강화되면 아예 집 살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대출이 막히면 더 큰 문제가 되니 지금 사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기 힘든 데다 정부의 부동산 관련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실수요자들이 전세에서 매수로 돌아서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9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계약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8616건으로 전세 거래량(8265건)을 넘어섰다. 서울에서 월간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전세 계약을 웃돈 것은 집값 급등기인 2020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전세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전셋값 부담도 커지면서 실수요자들이 매매로 눈을 돌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5월 서울 매수우위지수는 77.90으로 집계됐다. 매수 강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근 두 달 연속 상승한 수치다. 매수우위지수는 전국 공인중개사무소를 대상으로 시장 동향을 조사해 산출하는 지표로 100에 '매수자가 많다'는 응답 비율을 더하고 '매도자가 많다'는 응답 비율을 뺀 값이다. 지수가 높을수록 시장에서 매수세가 강하다는 의미다.
강북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를 구하지 못해 매매로 돌아서는 실수요자가 예전보다 확실히 늘었다"며 "계약을 서두르려는 문의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거래는 중저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5월 1일부터 이날까지 신고된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는 총 1만1110건이다. 이 가운데 15억원 이하 거래는 8356건으로 전체의 75.2%를 차지했다. 9억원 이하 거래는 5268건(47.4%), 6억원 이하 거래는 2607건(23.5%)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한 노원구를 중심으로 거래가 집중됐다. 같은 기간 노원구 거래량이 1206건으로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았고, 이어 구로구(842건), 강서구(756건), 송파구(678건), 성북구(635건) 순이었다. 실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진입 부담이 적은 지역으로 몰리는 양상이다.
시장에서는 전세시장 불안이 이어지는 한 실수요자들의 매매 전환 흐름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심형석 법무법인 조율 수석전문위원(미국 IAU 교수)은 "전셋값 상승 자체가 매매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전세매물 부족은 매매 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이라며 "최근에는 전세매물이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매매가격도 함께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7월 발표될 세제개편안의 내용과 추가 대출 규제 여부는 하반기 시장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여부와 추가 대출 규제는 하반기 시장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실수요자들은 세제와 금융 규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