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일러스트레이터나 웹소설 작가, 음악을 만드는 이들 사이에 부쩍 늘어난 걱정이 있다. “내가 만든 작품이 나도 모르게 인공지능(AI)의 학습 재료로 쓰인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다. 생성형 AI가 그럴듯한 그림과 글, 노래를 쏟아내는 시대에, 그 결과물의 바탕에는 누군가 공들여 만든 창작물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남의 저작물을 AI 학습에 쓰는 것은 원칙적으로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한 이용 행위다. 저작물을 복제해 학습 데이터로 집어넣는 순간 복제권 침해 여부가 문제된다. 인터넷에 공개돼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료라도 마음대로 복제해 AI 학습에 쓸 수는 없다. 다만 저작권법은 허락 없이 이용했더라도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공정이용’으로 보아 침해의 예외를 인정한다.
AI 학습이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법적 논쟁거리다.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스가 자사의 기사가 무단으로 학습에 쓰였다며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낸 거액의 소송이 여전히 공방 중이고, 무엇보다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의 저작권 소송이 최근 창작자들과 IT 업계의 이목을 한꺼번에 모았다. 앤트로픽이 AI 학습을 위해 ‘라이브러리 제네시스’ 같은 불법 복제 도서 사이트에서 수백만 권의 책을 무단 수집했다가 작가들의 집단 소송에 직면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미국 법원은 의미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 적법하게 확보한 데이터로 AI를 학습시키는 것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변형적 이용’으로 공정이용이 될 여지가 있지만, 불법 복제된 도서를 학습에 쓰는 것은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막대한 법적 위험을 체감한 앤트로픽은 결국 작가들에게 15억 달러(약 2조 원)를 지급하고 불법 다운로드한 원본 파일을 모두 폐기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저작권 소송 역사상 최대 규모인 이 합의안은 올해 5월 법원의 승인 심리를 거쳤지만, 최종 승인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대다수 권리자가 이미 합의에 동의한 만큼 승인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며, 최종 확정되면 AI 기업이 데이터 수집 단계의 적법성을 얼마나 무겁게 다뤄야 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선례가 될 전망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도 올해 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AI 학습의 공정이용 판단 기준을 정리한 「생성형 인공지능의 저작물 학습에 대한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안내서」를 내놓았다. 창작자가 기억할 핵심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AI가 내 작품을 ‘그대로 베끼는’ 데 썼는지, 아니면 수많은 데이터 중 하나로 ‘학습’해 전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데 썼는지이고, 다른 하나는 그 AI 때문에 내 작품의 시장 수요나 가치가 훼손되는지다. 예컨대 특정 작가의 화풍만 집중적으로 학습시켜 그 작가를 대체할 상업적 결과물을 만든다면, 공정이용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참고로 ‘학습’ 단계의 문제와 ‘결과물’ 단계의 문제는 완전히 별개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앤트로픽 사례처럼 학습 과정이 불법이어도 생성된 결과물은 기존 저작물에 관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적법하게 산 데이터로 학습한 AI의 결과물이 우연히 기존 저작물과 ‘실질적으로 유사’하다면 저작권 침해가 성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창작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용 조건을 분명히 밝혀 두는 것이다. 자신의 웹사이트나 포트폴리오에 ‘AI 학습을 위한 크롤링과 무단 사용을 금지한다’는 약관이나 기술적 조치를 명확히 해두면, 그럼에도 무단 학습이 이뤄졌을 때 AI 기업의 공정이용 항변을 깨뜨리는 유리한 정황이 된다.
기술의 속도를 법이 완벽히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창작자 스스로 내 작품을 공개함에 있어 이용허락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여 두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확실한 자기방어가 된다.
‘법무법인(유한) 원’ 미디어·엔터테인먼트팀은 영화, 방송, 공연, 매니지먼트, 웹툰, 출판, 캐릭터 등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걸쳐 자문과 소송을 수행해 왔다. 콘텐츠 산업에서 요구되는 전문성과 풍부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최적의 법률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23년, 2024년, 2025년 ABLJ(Asia Business Law Journal)이 선정한 ‘한국 최고 로펌’에 3년 연속 이름을 올리며 엔터테인먼트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