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RARE ] VOL. 9
밀당은 빈곤의 증거:
슈퍼리치들이 연애하는 법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이 있다."
부자 중에서도 '슈퍼리치'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명품관의 오픈런 줄에는 그들이 없습니다. 세상의 0.0001%로 살아가는 그들, '천외천'의 삶은 우리의 상식 밖 궤도에서 움직입니다.
로고가 없는 3000만원짜리 코트, 대중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1억원의 침대, 그리고 지도에서 지워진 리조트. 남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과시'가 아니라,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단절'을 사는 그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이투데이 [THE RARE]는 일반인들은 접하기도 힘든,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훔쳐보고 싶은 견고한 성벽 안쪽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고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지갑을 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자본주의 최정점에 선 그들의 소비와 취향, 그 속에 숨겨진 부의 트렌드를 들여다 봅니다.
상위 0.0001%가 사는 세상의 문을 열다
VOL. 9 연애

금요일 저녁, 도심의 소박한 선술집이나 불빛이 아늑한 골목길은 퇴근 후 설레는 발걸음으로 마주한 청춘들로 북적입니다. 몇 달 전부터 예약 전쟁을 치러야 하는 대단한 미슐랭 레스토랑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초여름 볕이 내리쬐는 한강 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유선 이어폰 한 쪽씩을 나눠 낀 채 흘러간 옛 노래를 함께 듣고,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가며 상대방이 젖을세라 슬며시 어깨를 내어주는 풍경들. 우리가 살아오며 마주하고 믿어온 연애란 대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하게 되던 순간을 떠올려봐도, 대부분 별것 없는 장면입니다. 특별한 장소도, 완벽한 타이밍도 아니었던 그냥 어느 평범한 날, 별 이유 없이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생긴 것. 우리가 알아온 사랑이란 대개 그런 식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단순했던 감정 뒤로 묵직한 현실이 따라붙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기준 국내 청년(19~34세)의 월평균 소득은 266만원입니다. 그런데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최근 2년 내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혼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신혼부부의 총 결혼 비용은 평균 3억8113만원에 달합니다. 집값을 빼더라도 예식장ㆍ스드메ㆍ혼수 등 결혼 준비 비용만 5912만원으로, 평범한 직장인의 연봉을 훌쩍 넘습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2024년 데이터 컨설팅 기업 피앰아이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 1위로 '경제적 원인'이 꼽혔고, 전체 응답자의 75.8%가 현재 연애를 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파트너를 선택하는 일에도 자연스럽게 더 많은 것을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의 가치관만큼이나 직업과 소득, 앞으로의 계획이 중요해졌고, 한때 '냉정하다'는 시선을 받던 기준들은 이제 '현실적'이라는 말로 받아들여집니다. 실제로 한국직업능력개발원(KRIVET)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월 근로소득이 400만원 이상인 남성은 200만원 미만인 경우보다 결혼 이행 가능성이 3.83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로맨스의 최상위 계급
그렇다면 이 현실의 무게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구현되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자본주의 최정점, '슈퍼리치'들의 세계입니다.
이곳은 우리가 상상하는 '상류층'과도 다릅니다. 최고급 결혼정보회사의 하이엔드 등급조차 이 세계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출발점에 불과합니다. 수백억 원의 자산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설 수 있는 무대도 아닙니다. 가문의 초청과 촘촘한 평판 심사를 통과한 이들만이 비로소 만남의 자격을 얻는, 철저히 닫힌 이너서클입니다.
이 안에서 연애는 단순한 끌림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전문 매칭 컨설턴트, 가문의 패밀리 오피스,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상대방의 3대에 걸친 백그라운드를 밀착 검증합니다. 첫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수십억 원짜리 비밀유지계약서(NDA) 서명이 먼저 오갑니다.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마저 통제되고, 로맨스는 마치 정교한 기업 합병(M&A)처럼 설계됩니다.
만남 전 서명하는 수십억원짜리 비밀유지계약서부터,
사랑의 결실 뒤에 숨겨진 철저한 자산 방어 요새, 초정밀 혼전계약서까지.
이번 호에서는 슈퍼리치들만이 공유하는 '천외천(天外天)'의 연애 법칙 네 가지를 들여다봅니다.
BARRIER 01 . INNER CIRCLE
자산 검증이 끝난 무대, 그들만의 리그

슈퍼리치들은 결코 대중적인 공간에서 파트너를 찾지 않습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철저한 신원 인증을 거쳐야 하는 폐쇄형 매칭 인프라입니다. 국내 최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결혼정보회사 '노블레스 수현'의 최상위 성혼 프로그램 '블랙 라벨(Black Label)'이 대표적입니다. 가입비만 최대 1억1000만원인데요. 자산 100억원 이상의 자산가, 대기업 CEO, 또는 정치·재계 유력 인사의 자녀여야만 가입 자격이 주어집니다.
비슷한 현상은 미국에서도 나타납니다. '실리콘밸리의 큐피드'라 불리는 에이미 앤더슨이 설립한 하이엔드 매칭 회사 '린스 데이팅(Linx Dating)'은 VIP 멤버십 기본 요금이 10만달러(약 1억500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조건이 까다롭거나 요구 사항이 많을수록 비용은 수억원을 훌쩍 넘기도 합니다.
Linx VIP 여성 소개글
Linx의 여성 VIP 고객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특별한 여성들입니다. 이들은 기업이나 기관을 이끌고,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많은 경우 가정을 훌륭하게 꾸려가고 있습니다.
어떤 고객은 자녀의 학교생활과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헌신적인 어머니이기도 하며, 또 다른 고객은 비즈니스ㆍ자선활동ㆍ예술ㆍ여행 등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에 끊임없이 기여하는 사람들입니다. 타인을 돌보고, 자신만의 유산을 만들고, 의미 있는 영향력을 남깁니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자신의 깊이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관계를 원합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충성심과 상호 존중,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입니다. 자신을 존중하고, 복합적인 매력을 이해하며, 자신이라는 사람의 다양한 면을 진정으로 알아봐 주는 남성과의 파트너십을 추구합니다.
Linx VIP 남성 소개글
Linx의 남성 VIP 고객들은 대체로 매우 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평생 함께할 파트너를 찾기 위해 최고 수준의 매치메이킹 서비스를 필요로 합니다.
고객층은 매우 다양합니다. CEOㆍ창업자ㆍ자선가ㆍ유명인ㆍ국내외 명문가 출신 인사 등이 포함되며, 연령과 국적도 다양합니다.
공통점은 대부분 대중의 관심을 받는 위치에 있으며, 결혼을 목표로 하는 건강하고 안정적인 장기적 일부일처 관계를 원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철저한 비밀보장과 신중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Linx가 대중 광고를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글로벌 매치메이킹 회사라는 점을 높게 평가합니다.
이들의 첫 만남은 단순한 호감만으로 성사되지는 않습니다. 이 세계의 전문 매칭 컨설턴트들은 심리학에 기반한 심층 인터뷰와 문장완성검사 등을 통해 의뢰인의 인생관ㆍ라이프스타일ㆍ가족 구성원의 배경까지 완벽하게 파악합니다. 한 사람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뒤에야 비로소 매칭이 시작되는 거죠.
린스 데이팅의 VIP 서비스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자체 회원 데이터베이스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마치 대기업이 임원을 영입할 때 헤드헌터를 쓰듯 미국 전역과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직접 누비며 적합한 상대를 찾아 나섭니다. 특정 국적, 학력, 종교, 나이 등 의뢰인이 제시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을 직접 발굴하는, 말 그대로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 방식입니다.
BARRIER 02 . SECURITY
사랑보다 먼저인 비밀유지계약서 'NDA'

슈퍼리치들은 연애의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그 핵심 수단이 바로 비밀유지계약서(NDA) 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초부유층을 매칭해 온 에이미 앤더슨은 "내 VIP 고객들은 상대를 처음 만나기 전, 반드시 법적 효력이 있는 NDA 서명을 요구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첫 만남 전부터 '법적 잠금장치'가 걸리는 셈입니다.
이런 관행은 유명인들 사이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근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트래비스 켈시와의 결혼을 준비하며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가는 일을 막기 위해 철저한 보안 조취를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연예 매체 TMZ에 따르면 결혼식 초청장을 받은 가족과 친구들은 엄격한 NDA에 서명해야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팝스타 두아 리파와 배우 칼룸 터너 역시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약 22억원 규모의 초호화 결혼식을 올리면서 행사 관계자는 물론 인근 주민들에게도 NDA를 받아 화제가 됐습니다.
실제 초고액 자산가들이 쓰는 NDA는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입니다. "정보 유출 1건당 100만달러(약 15억원)를 즉시 배상한다" 는 조항은 기본이고, 데이트 중 나눈 대화, 방문한 장소, 상대의 식습관·취향·감정 상태·외모, 심지어 문자 메시지 캡처본까지 만남을 통해 알게 된 모든 것이 봉인 대상입니다.
미국의 유명 래퍼 잭 할로우는 남성 잡지 GQ와의 인터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여성 모두에게 NDA에 서명을 받는다고 밝혔습니다.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에도 NDA를 작성한다고 설명했죠. 그는 자신의 앨범에도 NDA 이야기를 담은 곡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잭 할로우 인터뷰 中
"앨범에서 NDA 얘기를 했다. 빌리 아일리시도 최근 비슷한 노래를 발표하면서 이 주제가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가사에는 '이름, 성, 생년월일, 그리고 서류에 서명하게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있는 일이다."
"I talked about 'NDAs' on my album; it’s my NDA record. And then Billie Eilish released one about it more recently, so it’s being talked about more, for sure. The lyrics go: ‘First name, last name, date of birth / make a bad bitch sign the paperwork...’ But it’s a real thing.”
잭에 따르면 모든 NDA 서명은 만남 전에 이뤄진다고 합니다. 일부 여성들은 계약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변호사와 상의하기도 한다는데요. 그는 NDA가 꼭 성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또 상대방에게는 "서명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우리가 함께하려면 필요한 절차"라고 설명하며 "내 문자 메시지가 친구들에게 공유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다. 나는 그냥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고, 이 일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로스앤젤레스의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들에 따르면, 과거에는 NDA가 가사도우미나 요리사 같은 고용인에게만 적용됐지만, 이제는 하룻밤 데이트 상대, 결혼식 하객, 심지어 행사장 근처 주민들에게까지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사진 한 장, 소문 한 줄로 기업 주가가 흔들리고 가문의 명성이 무너질 수 있는 시대, NDA는 그들이 세우는 최소한의 법적 방어벽입니다.
BARRIER 03 . EFFICENCY
밀당은 빈곤의 증거

하루에도 수천억원의 향방을 결정하는 슈퍼리치들에게 '시간'은 돈보다 귀한 자산입니다. 에이미 앤더슨은 "부유한 자산가들은 돈은 다시 벌 수 있어도, 흘러간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이 신조는 연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들은 데이팅 앱을 스와이프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만남의 전 과정을 검증된 전문가에게 맡깁니다. 미국 경제지 포춘(Fortune)에 따르면 초고액 자산가를 위한 하이엔드 매칭 서비스 비용은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에 달합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와의 인터뷰에서 한 매치메이커는 "고객 한 명당 연간 15만~50만 달러(약 2억~7억 원)를 받으며, 단 한 번의 완벽한 데이트를 위해 100건이 넘는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데이트 일정을 잡는 방식도 다릅니다. 연인끼리 직접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쓰는 대신, 개인 비서·패밀리 오피스·전담 어시스턴트가 마치 중요한 M&A 미팅을 조율하듯 물밑에서 동선과 일정을 맞춥니다. 전담 팀은 의뢰인이 오직 상대방과의 교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데이트에 수반되는 모든 변수를 자본으로 미리 완벽하게 제거합니다. '셀렉트 데이트 소사이어티(Select Date Society)'의 공동 설립자 산드라 마이어스와 앰버 리가 운영하는 최고급 '데이터 컨시어지(Date Concierge)' 프로그램의 실제 작동 메커니즘을 보면 이 조율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합니다.
초정밀 사전 스크리닝
단순히 조건을 맞추는 수준이 아닙니다. 창업자가 잠재 고객을 직접 대면 인터뷰해 개인 배경, 핵심 가치관, 인생 목표를 꼼꼼히 분석합니다. 이후 범죄 이력 조회와 NDA 서명까지 마친 검증된 후보군 안에서만 매칭이 이루어집니다.
데이트 계획 대행
매칭이 완료되면 데이트 컨시어지 팀이 나머지를 전부 처리합니다. 일정 조율부터 최고급 레스토랑 예약, 이동 동선, 의전 차량 연계까지 고객이 신경 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포춘(Fortune)에 따르면 이 탐색 범위는 한 도시에 그치지 않고 여러 도시와 국가에 걸쳐 설계되기도 합니다.
에티켓 코칭 및 사후 피드백
데이트 전후로 전담 팀이 밀착 지원합니다. 상류층 사교계에 맞는 에티켓을 사전에 코칭하고, 만남이 끝난 뒤에는 매치메이커가 양측 모두와 접촉해 결과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다음 만남을 위한 피드백 세션을 진행합니다. 감이 아닌 데이터로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잦은 연락도, 감정 소모도 최소화합니다. 서로의 커리어와 공적 영역을 철저히 존중하되, 함께하는 짧은 시간만큼은 최고 품질의 경험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 이 냉정할 정도의 효율성이야말로 상위 0.001% 세계를 지배하는 로맨스의 법칙입니다.
BARRIER 04 . INDEMNITY
감정의 끝에 기다리는 초정밀 혼전계약서

뜨거운 감정으로 시작된 만남이더라도, 슈퍼리치와의 관계의 종착지에는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개입하는 정교한 '혼전계약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거 중산층 사이에서 "이혼하지 않아야 부자가 된다"는 말이 불문율이었다면, 상위 0.0001%에게는 오히려 "이혼을 잘해야 부자로 남는다"는 명제가 지배합니다.
영국의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기업 CEO에게 이혼은 사생활이 아닌 업무"라고 지적했듯, 이들의 결합과 결별은 단순한 자산 분할을 넘어 기업 지배구조와 상속 체계 전체를 뒤흔드는 리스크이기 때문입니다.
혼전계약서를 소홀히 했을 때의 대가는 가혹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입니다. 베이조스는 2019년 전 부인 매켄지 스콧과 이혼할 당시 혼전계약서가 없었던 탓에 결국 아마존 발행 주식의 4%, 약 54조원을 고스란히 넘겨줘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2025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로런 산체스와 624억원 규모의 초호화 결혼식을 올렸을 때, 세간의 관심은 화려한 식장이 아니라 "이번엔 혼전계약서를 설계했는가"에 쏠렸습니다.
반면 혼전계약서로 경영권을 지켜낸 사례도 있습니다. 헤지펀드 업계의 제왕 조지 소로스는 25년을 함께하고 자녀까지 둔 두 번째 부인과 이혼하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계된 혼전계약서 덕에 8000만달러(약 1229억원)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했습니다. 글로벌 인프라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전 회장이 13년의 결혼생활 끝에 전 부인에게 떼어준 위자료 1억8000만달러(약 2766억원)의 절반 수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아무리 사랑해도 혼전계약서를 써라"라고 노골적으로 조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체중 규제부터 관계 횟수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조항들
1. 행동 및 외모 규제 조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결혼 후 체중 9kg 이상 증량 금지', '주 4회 이상 운동 필수' 같은 외모 유지 조항이 포함되기도 하며, 외도 적발 시 100만달러(약 15억원)를 배상한다는 페널티 조항이 실제로 포함됩니다.
2. 은밀한 사생활 조항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로페즈와 벤 애플렉 커플이 체결했던 '최소 주 4회 성관계 수행', '러브신 촬영 시 배우자 입회' 조항이나, 일본 여배우 사와지리 에리카가 맺었던 '부부관계 월 5회 제한, 초과 시 1회당 50만엔(약 480만원) 지급' 및 '이혼 시 남편 재산의 90% 소유' 같은 극단적인 조건들이 실재합니다.
3. 이별 조항
이혼 시 전용기나 경주마의 관리 및 사용권은 어떻게 나눌지, 이혼 후 정확히 며칠 이내에 저택에서 짐을 싸서 나가야 하는지, 심지어 이혼 후 SNS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언급을 금지하는 권한까지 세세하게 규정합니다.
최근에는 혼전계약서의 형태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결혼 생활이 일정 기간 이상 유지되면 계약이 자동으로 무효가 되는 '일몰 조항', 결혼 기간이 길어질수록 보상액이 500만달러에서 2000만달러로 단계적으로 늘어나는 '누진형 계약' 등이 대표적입니다.
에이미 앤더슨은 "혼전계약서는 파국을 준비하는 비관적 문서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재정적·정서적 투자 구조를 투명하게 밝힘으로써 결혼 생활을 외부 리스크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라고 설명합니다. 가장 뜨거워야 할 사랑의 결실이, 가장 차가운 계약서의 형태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슈퍼리치 세계의 룰입니다.
EPILOGUE
가장 희귀한 럭셔리

1956년,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그의 명서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인 활동이다. 그것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많은 현대인이 사랑을 '좋은 대상을 찾는 문제'로만 생각할 뿐, 정작 스스로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는 소홀하다고 지적했죠.
70년이 지난 지금, 이 말이 가장 서늘하고도 선명하게 증명되는 무대가 있습니다. 바로 상위 0.0001%의 연애 시장입니다.
드라마와 영화 속엔 흥미로운 장면이 반복됩니다. 수조 원대 자산을 가진 재벌 후계자가 배경을 숨긴 채 허름한 옷을 입고 시장 골목을 누비거나, 일부러 돈이 없는 척 상대를 시험하는 장면입니다. 이 고전적인 클리셰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닙니다. 상위 0.0001%의 심장 깊숙이 자리한 본질적인 공포, 즉 "나를 향한 감정이 내 자산을 향한 계산인가, 나라는 인간을 향한 순수한 끌림인가" 라는 질문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서사입니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자산을 쌓아 올려도, 그 질문만큼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진심을 나누는 순간만큼은 전용기에서 내려와, 계약서라는 무기를 내려놓고 날 것의 자기 자신으로 상대와 마주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건과 계산으로 설계된 재벌들의 정략결혼이나 기이한 혼전계약서 뉴스를 보며 혀를 차곤 합니다. 수조원의 자산을 가졌더라도 오직 자산 방어와 법적 규제로만 유지되는 관계에서 공허함을 느끼죠. 반면 소나기가 내리는 날 작은 우산 하나를 같이 쓰며 한쪽 어깨가 젖는 것도 모르는 평범한 연인의 모습에선 묘한 따스함과 부러움을 느낍니다.
이것은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은 화려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여 주는 정서적 교감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프롬이 말한 사랑의 기술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자본의 논리를 정면으로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시장 경제에서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한 사람이 더 좋은 것을 독점하지만, 사랑만큼은 낡은 소파 위에서도, 허름한 골목길에서도 똑같은 무게와 깊이로 피어납니다. 수천만원을 들여 헬기를 띄우고 프라이빗 미술관을 통째로 빌릴 수는 있어도, 그 안에서 눈을 맞추며 느끼는 순수한 전율을 돈으로 더 많이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상은 자본에 따라 철저히 계급화되어 있지만, 진정성이라는 사치재만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허락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대부분은 데이트 전 NDA에 서명하거나, 패밀리 오피스를 통해 저녁 약속을 잡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밤, 나를 있는 그대로 알아봐 주는 누군가와 시시한 농담을 나누며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면, 여러분은 이미 슈퍼리치들이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견고한 성벽 안에서도 끝내 손에 넣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럭셔리를 쥐고 있는 겁니다.
조건 없는 진심으로 곁의 누군가를 안아준 여러분,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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