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인 여름은 아직인데 '폭염'에 따른 고충이 세계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학교 문이 닫히는가 하면 국가의 랜드마크 역시 단축 운영에 돌입하고 월드컵 거리 응원도 취소됐죠. 뜨거운 햇볕 아래 함께 함성을 지르던 축제의 장도 안전 문제 앞에서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던 건데요. 더위가 일상과 행사, 이동과 소비를 흔드는 변수로 떠오른 모습입니다.
특히 올해 여름은 한국에서도 예년보다 무더울 가능성이 큽니다. 타국의 폭염 풍경이 남 일이 아닌 상황인데요. 문제는 폭염의 여파가 거리와 경기장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람의 몸을 지치게 하는 더위는 생활 전반을 흔들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다른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서유럽은 폭염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입니다. 40도 안팎의 더위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상당수 학교가 휴교할 예정인데요. 에두아르 제프레 교육 장관은 21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3 방송에 출연해 22일 폭염 적색경보가 발령된 지역에서 초·중학교 845곳이 휴교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1800곳은 수업 시간을 조정해 이른 오후에 학생들을 조기 하교시킬 계획이죠.
프랑스 기상청에 따르면 21일 기준 프랑스 본토 96개 데파르트망 중 35곳에는 최고 수준인 폭염 적색경보가, 45곳에는 주황색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폭염 영향권에 든 주민만 약 5300만 명에 달하는데요. 북서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사실상 프랑스 전역이 폭염 영향권에 놓인 셈입니다.
관광과 축제 현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철로 된 에펠탑은 폭염 여파로 오후 4시까지만 단축 운영됐습니다. 프랑스 당국은 적색경보가 내려진 지역의 축제 장소에서 음주를 금지했고, 일부 도시에서는 예정된 콘서트를 취소했죠. 더위 속 음주가 탈수와 온열질환 위험을 키울 수 있는 만큼 행사장에 금주령이 내려진 겁니다.
스페인에서는 월드컵 거리 응원 일정까지 취소됐습니다. AFP통신에 따르면 스페인 축구연맹은 마드리드 중심부 콜론 광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스페인과 사우디아라비아 경기를 중계할 예정이었지만, 수도권 기온이 40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계획을 접었는데요. 당국은 축구 팬들에게 에어컨이 가동되는 실내에서 경기를 시청하라고 권고했죠.
이탈리아와 독일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이탈리아는 볼로냐, 피렌체, 밀라노, 토리노 등 8개 도시에 적색경보를 내렸고, 독일 일부 지역은 기온이 38도까지 치솟았습니다. 베를린에서는 폭우로 야외 음악 축제가 차질을 빚기도 했습니다.
서유럽을 덮친 이번 폭염은 이른바 '열돔' 현상 탓으로 분석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유입된 뜨거운 공기 덩어리가 강한 고기압에 막혀 상공에 갇힌 거죠.

더위는 한국에서도 나타날 예정입니다.
22일 기상청 등에 따르면 올여름(6~8월) 기온이 평년(1991~2020년·30년 평균)보다 높거나 비슷할 확률은 90%입니다.
이 원인으로는 높은 해수면 온도가 꼽힙니다. 높은 해수면 온도로 인해 대류 활동이 증가하면 한반도 동쪽으로 고기압성 순환이 발달하는데요. 고기압이 세력을 유지하면 우리나라로 뜨겁고 습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찜통더위'가 나타나죠.
현저히 줄어든 북극 해빙도 더위를 부채질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3월 측정한 북극 해빙 면적은 1429만㎢로 위성 관측이 이뤄진 지난 48년 중 가장 적었습니다.
기상청 폭염특이기상연구센터장인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지난달 27일 열린 기상청 기상강좌에서 "북극 해빙이 녹는 것은 북극 진동이 강해진 것과 관련이 있다"며 "북극 진동이 발생하면 중위도에서 고기압이 정체하게 되고 이런 현상은 1994년과 2018년에 강력한 폭염을 일으킨 바 있다"고 짚었죠.
폭염만 나타나면 다행일까요.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국지성 호우 우려도 큰 상황입니다. 기온이 오르면 공기가 담을 수 있는 수증기량도 증가하면서 강수량이 늘어날 확률까지 높아지는데요. 이미 온난화 여파로 장마와는 상관없이 대기 불안정에 의한 기습 호우가 잦아진 요즘이죠.
기상청은 올여름 강수량이 6~7월에는 평년보다 대체로 많고, 8월은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스콜'과 양상이 비슷한 게릴라성 호우가 잦아지면서 장마철과 상관없이 폭우가 쏟아지는 일도 빈번할 것으로 내다봤는데요. 실로 지난해에도 남부지방의 장마 기간은 7월 1일 잠정적으로 종료됐지만 이후 7월 17일 하루에만 7월 한 달 평균 강수량에 맞먹는 300㎜ 이상의 극한 호우가 쏟아진 바 있습니다.
'슈퍼 엘니뇨'와 함께 폭염, 폭우가 더욱 빈번해질 거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21일 미국의 기상·해양 관측기관인 해양대기청(NOAA)이 최근 태평양에서 엘니뇨 조건이 형성됐다고 발표했는데요. NOAA는 이번 엘니뇨가 올해 말 정점에 이를 무렵 '매우 강한' 수준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63%라고 봤습니다. 다만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예측 모델마다 결과 차이가 크다며 아직 강도를 단정하기에는 이르다고 '신중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엘니뇨는 태평양 바닷물이 평년보다 따뜻해지면서 세계 곳곳의 강수량, 더위의 강도를 바꿉니다. 지역에 따라 가뭄이나 폭우를 부르는데요. 이에 따라 농산물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식량 가격이 흔들리고, 감염병 확산 범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죠.
여기에 태풍이라는 변수도 있습니다. 22일 기상청에 따르면 제7호 태풍 '메칼라는 필리핀 동쪽 해상에서 발생한 뒤 점차 세력을 키우며 북상 중인데요. 대만 인근 해상을 지나 일본 오키나와 방향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북태평양고기압의 확장 정도와 주변 기압계 변화에 따라 진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태풍은 공급하는 수증기가 북상해 정체전선과 만나면 비구름이 급격히 발달할 수도 있는데요. 특히 메칼라가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북상한다면 남해상 정체전선에 수증기가 유입되면서 제주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강수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에 국지성 집중호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죠.

폭염과 폭우는 물가를 끌어올리는 변수로도 작용하는데요. 기온 상승이 농작물 생육 부진과 가축 폐사, 양식 수산물 피해 등으로 이어지면 공급이 줄고, 이는 곧 가격 상승 압력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체감 물가는 심상치 않습니다. 22일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특란 10구의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5222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같은 달 3786원보다 38.6%, 전달 4476원보다 16.7% 오른 수준인데요. 특란 10구 월평균 소비자 가격이 5000원을 넘은 건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이죠.
계란값 상승에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와 산란계 마릿수 감소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여기에 여름철 폭염까지 겹치면 산란율 저하로 공급 부담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더위가 닭의 사육 환경을 악화시키고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만큼,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기 전부터 가격 불안 우려가 나오는 중이죠.
다른 먹거리도 안심하기 어렵습니다. 폭염은 채소류의 생육을 늦추고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고, 집중 호우는 침수 피해와 출하 지연을 부르기 때문인데요. 수산물 역시 고수온이 이어지면 양식장 피해로 번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더위가 식품 가격을 밀어 올리는 현상은 '히트플레이션'으로 불립니다. 폭염을 뜻하는 '히트'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을 합친 말인데요. 더위가 건강과 전력 수요의 문제를 넘어 장바구니 부담과 외식 물가, 나아가 소비 심리까지 흔드는 경제 변수로 번지는 모습입니다.
이에 정부도 수급 관리에 나섰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7일 '여름철 농축산물 수급안정대책반'을 구성하고 첫 회의를 열었습니다. 폭염과 집중호우, 태풍 등 여름철 재해가 농축산물 생산과 유통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해양수산부도 수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대응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달 중순까지 정부 비축 수산물 최대 8000t을 시장에 공급하고 양식장이 고수온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장비 지원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다만 아직 여름이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려는 이어지는데요. 지정학적 긴장, 높은 에너지 가격, 공급망 리스크 등과 이상 기후가 결합하면 농업과 물류, 에너지, 물가로 충격이 잇따라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올여름 무더위를 간과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