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도 쇳물 앞 순찰하는 포스코 '로봇 개'…고위험 작업 무인화로 안전·효율↑
에코프로, AI로 배터리 품질 99.6% 예측…2030년 완전 무인화 '다크 팩토리' 실현

쾌청한 초여름,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맞닿은 울산 미포만. 여의도 면적의 2.7배, 축구장 1100여 개 크기(약 242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부지 위로 수십 미터 높이의 붉은색 '골리앗 크레인'들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레고 조립장처럼 곳곳에서는 선박의 몸통이 될 대형 철제 블록들이 트랜스포터에 실려 쉴 새 없이 이동 중이었다. 이달 12일 찾은 대한민국 중공업의 심장, HD현대중공업의 웅장한 선박 제조 현장이다.
압도적인 거대함이 지배하는 이 야드 이면의 공장 내부에서는 지금, 전에 없던 정밀하고 조용한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불꽃이 튀고 땀 냄새가 진동하던 '노동 집약형' 조선소 현장이 AI와 로봇이 주도하는 'M.AX(제조업 AI 전환)' 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조선업은 배마다 설계가 다르고 취급하는 부재의 형태가 불규칙해 자동차나 반도체 공정처럼 자동화를 도입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산업으로 꼽혔다. 하지만 중국의 맹렬한 추격을 따돌리고 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HD현대중공업은 생산 현장에 과감하게 로봇과 AI를 이식했다.
선각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레일 위를 스스로 이동하며 블록을 용접하는 '자율 이동형 전동레일 협동로봇'이 눈에 띄었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도면을 보고 용접 조건을 로봇에 입력해야 했지만 이제는 3D 도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로봇이 알아서 용접선을 인식하고 최적의 경로를 계산해 작업을 수행한다.
작업 효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기존의 고정형 협동로봇 체제에서는 1명의 작업자가 최대 2대의 로봇만 관리할 수 있었으나 레일형 시스템 도입 이후 1명이 6대에서 최대 8대를 동시에 제어할 수 있게 됐다. 현장 관계자는 "로봇 도입으로 주야간 작업을 돌릴 경우 하루 생산량이 기존 500t에서 1000t으로 두배가량 늘어났다"며 "디지털 트윈 기술이 연동돼 있어 관리자는 현장에 가지 않고도 사무실 모니터를 통해 로봇의 실시간 작업 현황과 품질 불량 여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곳은 선박 블록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기 위해 설치하는 고리인 '러그(LUG)' 제조 현장이었다. 수많은 선박 블록에 필수적으로 부착되는 러그는 과거 6명의 작업자가 수작업으로 하루 100개가량 만들어냈다. 하지만 지난 5월 도입된 '러그 자율제조 시스템'은 이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산업용 로봇 8대와 자율주행로봇(AMR) 2대가 투입돼 사람의 개입 없이 용접부터 절단, 이송까지 전 과정을 무인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이 시스템을 통해 러그 생산량은 기존 대비 87.5%나 수직 상승했다. 단순히 속도만 빨라진 것이 아니다. 다품종 유연 생산 체계를 갖춰 무려 43종에 달하는 러그를 알아서 척척 만들어낸다. 이는 전체 러그 사용 물량의 95%를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조선소에 앞서 11일 방문한 경북 포항의 산업 현장에서도 M.AX 열기는 뜨거웠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심장부인 1제선공장. 1500도에 달하는 붉은 쇳물(용선)이 쏟아져 나오는 고로 주위는 숨이 턱 막힐 듯한 열기로 가득했다. 표면 온도가 200~300도에 육박해 가스 누출 시 자칫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고위험 구역이다.

이 위험천만한 쇳물 앞을 사람이 아닌 사족보행 로봇(스팟)이 유유히 걸어 다니며 순찰을 돌고 있었다.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과 포스코가 공동 개발 중인 이 로봇은 고로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는 '풍구' 주위를 하루 12번씩 자율 주행하며 열화상 카메라와 음향 센서를 통해 가스 누출이나 설비 이상을 정밀하게 진단한다.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던 작업을 로봇이 정량적 데이터로 대체한 것이다.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수십 킬로미터 길이의 벨트 컨베이어 라인에도 혁신이 진행 중이다. 로봇이 와이어를 타고 이동하며 롤러의 이상 소음을 감지하고 고장이 난 12~70kg짜리 롤러를 사람 대신 무인 로봇이 뽑아 교체하는 시스템이 하반기 실외 테스트를 앞두고 있다.
중앙통제실에서는 사람을 대신해 AI가 고로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있었다. 마치 한의사가 진맥하듯, AI가 고로 내부의 화학 반응과 가스 성분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코크스(환원제) 투입량을 조절하며 용광로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포항 영일만산업단지에 위치한 에코프로비엠 현장 역시 양극재 생산 공정에 'AI 자율제조'를 전면 도입하며 생존 전략을 짜고 있었다. 송호준 에코프로 대표는 "중국은 한국 대비 배터리 인력을 30배 이상 배출하며 융단 폭격하듯 성과를 내고 있다"며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AI를 통해 수십 명이 하는 시행착오를 단축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에코프로는 생산성을 기존 대비 300%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전방위적인 AI 혁신을 추진 중이다. 특히 품질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발생하는 후공정 리스크를 막기 위해 'AI 품질 통합 분석 시스템'을 개발, 정제된 데이터 기반으로 99.6%의 높은 정확도를 가진 예측 모델을 구축했다. 내부 온도가 700~800도 이상 올라가는 열악한 소성로 환경에는 자율주행로봇(AMR)을 투입해 음향 센서와 열화상 카메라로 설비의 이상 유무도 점검하고 있다.
에코프로는 궁극적으로 2030년까지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는 제조 무인화 공장인 '다크 팩토리'를 실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