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소아 의료…‘사법 리스크에 자원도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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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소아 의료에 대한 제도와 법적인 위기, 이대로 좋은가?’ 심포지엄 진행

▲11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소아 의료에 대한 제도와 법적인 위기,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정책 심포지엄을 개최한 가운데 송한섭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가 발표 중이다. (한성주 기자 hsj@)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의 진료 환경이 악화일로다. 환자와의 소송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 소아청소년을 위한 의약품 등 진료 자원도 부족하다는 것이 의료 현장의 고충이다. 전문가들은 의료진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1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소아 의료에 대한 제도와 법적인 위기,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정책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은 ‘소아의료의 법적·제도적 과제’와 ‘소아 필수 의료자원 수급 위기’ 세션으로 구성됐다.

시행 앞둔 ‘필수 분야 공소 제한’ 의료분쟁법 개정안…“객관적 기준 필요”

소아청소년과는 환자와의 의료분쟁이 가장 빈번한 분야로 꼽힌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의료분쟁은 ‘낮은 수가’에 이어 소아청소년과 기피 요인 2위를 유지 중이다. 2025년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는 소아청소년과가 103명만 선발되며 전체 정원 대비 17.4%라는 역대 최저 충원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사를 처벌하는 근거는 형법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다. 송 변호사에 따르면 의사가 주의 의무를 위반해 환자에게 사망하거나 상해가 일어난 경우, 의사가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런 결과를 막을 수 있었을 때 해당한다. 소아 의료사고는 성인보다 소아 환자의 증상이 더욱 비특이적이고, 환자가 스스로 증상을 설명하는 데 서툴다는 특성 때문에 특히 다루기 까다롭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제도 개선에 나섰다. 내년 5월 시행을 앞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의료진을 보호하는 조항, 환자의 권리 및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조항이 핵심이다. 특히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공소가 불가하도록 명시했다. 또한 피해 환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검사가 공소할 수 없는 범위를 경상해에서 중상해까지 확대했으며,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의 책임보험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토록 했다.

다만 개정 법률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 전문가 시각이다. 의사 출신 법조인인 송한섭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의사를 공소할 수 없는 조건 가운데 ‘중과실이 없을 것’을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할 것”이라며 “환자마다 상태가 다르고, 교수마다 치료 방식과 판단이 다르므로 ‘진료 지침에서 현저히 벗어난 행위’ 등의 기준은 상당히 모호하다”라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한국의 의료사고 관련 처벌이 과도하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의사를 형사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라며 “미국, 영국, 일본은 대부분 민사 사건으로 진행하며, 형사 처벌 조항이 있어도 실제로 작동하는 경우는 드물다”라고 설명했다.

▲11일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소아 의료에 대한 제도와 법적인 위기,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정책 심포지엄을 개최한 가운데 이상윤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발표 중이다. (한성주 기자 hsj@)

사라지는 소아 의약품·기자재…“소아 심장 카테터 공급 종료, 대책 없어”

소아 환자를 위한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한국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소아는 성인보다 소량의 약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아용 의약품은 생산 단가가 높다. 의약품 업체들은 시장성이 낮다는 이유로 소아용 의약품의 생산을 포기하기 쉽다. 소아용 의료기기와 치료재료 역시 수요 자체가 적지만 원가 부담은 지속해서 높아져, 공급 업체들이 손을 떼는 실정이다.

실제로 2019년에는 국내에 유일하게 인공혈관을 공급하는 기업인 미국 고어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선천성 심장병 환아들의 수술이 불가능해지는 위기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가 고어 측에게 기존보다 높은 가격을 보장하기로 하면서 가까스로 공급을 유지했다.

최근에는 심장 카테터 제품을 국내 공급하는 애로우가 일부 제품을 철수시키기로 하면서 소아 심장 치료에 비상이 걸렸다. 현재 소아에 필요한 카테터는 희소의료기기 지정을 신청한 상태다. 이상윤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난 5월에 신청했으며, 지정까지 6개월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수급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은 가격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 해외와 비교해 수가가 낮아 제조 및 수입 업체들이 진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라며 “게다가 소아 환자의 치료에 필수적인 재료는 사용 빈도가 낮아 인허가와 재고 유지 비용 부담이 커서 기업들이 굳이 공급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는 국가 비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응급·필수 품목을 중앙 재고로 확보해 필요한 기관에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필수 품목에 한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속 도입이나 조건부 사용 허가 방식의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 무엇보다 수요가 적은 제품도 공급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 교수는 “최소 구매 수량을 보장하고, 보험 수가를 적절히 보정하면서 공급 유지를 독려하도록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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