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보다 먹고 살기가 중요"⋯물가 폭등이 불러온 Z세대 진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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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이 정치적 진보주의 흐름 바꿔
정치 이념 대신 실용주의 택한 Z세대들
"생활비 위기가 불러온 일시적 시대 현상"

(출처 이코노미스트 / 그래픽=ChatGPT AI 편집 이미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탓에 세계 각국이 물가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구 정치권에서는 급격한 물가 상승이 '정치적 진보주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도와 보수주의를 지향했던 젊은 층마저 실용주의를 앞세워 진보주의로 이동 중이라는 시사 매체 보도까지 나왔다.

13일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생활비에 짓눌린 전 세계 젊은 유권자들이 정치적 이념 대신 실용을 중시하면서 진보주의의 방향도 바뀌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유럽 진보주의는 자본주의에 맞서기보다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노동조합과 중공업 노동자의 지지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공공시설을 국유화하고 소득을 재분배하며 복지국가의 틀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생활비에 짓눌려 허덕이는 젊은 유권자들이 속속 이 진영에 합류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일컬어 ‘Z세대 진보주의’로 규정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동안 이념을 따라 움직였던 진보주의도 이제 현실성을 따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Z세대 진보주의자들은 주택 임대료를 낮추고 공공요금을 줄이며 버스를 무료로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거창한 이념주의보다 당장 눈앞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이 흐름의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이후 커진 체감 경기의 악화도 존재한다. 특히 선진국의 경우 고용 지표와 주식시장은 호황을 누리는 반면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값과 임대료, 식료품 값은 뛰었고 일자리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경제성장이 지속됐음에도 생활 수준이 나아졌다는 감각은 약해졌다. 결국 이익의 재분배를 원하는 유권자들이 속속 진보주의 진영에 합류 중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실제로 서구 정치권의 당선 사례 등을 이런 현상의 사례로 꼽았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시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맘다니 시장은 △주택 임대료 안정화 및 동결 △저가 생필품을 파는 시립 식료품점 개설 △5세 미만 아동 무상 보육 등을 앞세워 당선했다. 미국 시애틀과 미시간, 위스콘신 등에서도 비슷한 성향의 진보주의 정치인들이 유사한 공약을 앞세워 부상했다.

흐름은 미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캐나다에서는 이익의 재분배를 앞세운 진보주의자 아비 루이스가 진보당 대표가 됐다. 영국에서도 잭 폴란스키가 이끄는 녹색당이 급부상했다. 독일 진보당 역시 수년 만에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 중이고, 프랑스에서도 젊은 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장뤼크 멜랑숑이 유력 대권 후보로 떠올랐다.

이들 모두 임대료 통제, 무료 대중교통, 무상 보육, 공공 식료품점 등의 공약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념보다 실용주의적 이익을 위해 진보주의를 추구하는 젊은 층이 증가하면서 이들이 주목받은 셈이다. 그동안 진보주의가 주장해왔던 인종차별과 다양성, 기후 위기 등의 의제는 생활비 폭등 앞에서 설 자리를 잃은 셈이다.

Z세대 진보주의자들은 중산층 증세 대신 부유층 증세를 원한다. 고급 주택에 과세를 추가하고,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를 상대로 한 부유세 도입 등을 주장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Z세대 진보주의자들이 원하는 정책에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임대료 규제는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을 줄일 수 있다. 주택 공급이 줄어들면 집값이 오르고 집값이 오르면 잠재적으로 임대료 상승 요인이 된다.

부유층 과세에 의존하는 것도 위험하다. 부유층이 이전보다 감소한 것은 물론, 부유층이 세금 부담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럼에도 Z세대 진보주의, 진보주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권이 직접 나서 월세를 낮추고, 장바구니 부담을 덜고, 일자리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단순하지만 강력하기 때문이다. 중도 정치인들까지 식료품 가격 상한제와 고소득층을 제외한 감세, 데이터센터 규제 등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결국 Z세대 진보주의는 정치적 이념의 확산보다 생활비 위기가 불러온 시대 현상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그러면서 경제학자·사회학자들의 연구와 분석을 바탕으로 "경제 지표는 개선됐으나 이는 우리의 실질적인 삶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이런 시대 속에서 젊은 유권자들은 거대 담론과 이념보다 당장의 월세와 밥값, 보육비, 일자리를 말하는 정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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