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중소형 조선 RG, 국책기관만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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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사에 ‘슈퍼사이클’이 찾아왔지만 중소형 조선사에는 여전히 넘기 어려운 문턱이 있다. 선수금환급보증(RG)이다. RG는 선주가 선수금을 지급하기 전 요구하는 보증서다. 조선사가 배를 제때 인도하지 못하면 금융기관이 선수금을 대신 돌려주는 구조다. 수주가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길목에 RG가 있는 셈이다.

조선업 회복세는 RG 수요를 더 키우고 있다. 신조선가가 오르고 수주 물량이 늘수록 필요한 보증 한도도 커진다. 특히 선형이 비교적 표준화된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을 주력으로 하는 중소형 조선사는 중국 조선소와 가격·납기 경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국책은행을 통한 선박금융과 보증 지원이 빠르다. 국내 조선사가 기술력으로 수주 기회를 잡아도 RG가 제때 나오지 않으면 계약을 포기하거나 선주와 기한 연장을 협상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 같은 문제를 짚었다. 최근 울산에서 열린 K-조선 간담회에서 “금융기관을 압박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정부가 위험을 분산하고 재정으로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했다. 금융기관이 손실 가능성이 큰 RG를 꺼리는 현실을 인정하되, 정부가 보증과 보험, 이차보전 등으로 위험을 나눌 구조를 만들자는 취지다.

이에 산업부와 금융위 등 관계 부처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 등 국책기관의 중소형 조선사 RG 한도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장 막힌 수주를 풀기 위한 현실적 해법이다. 하지만 이미 중소형 조선 RG의 80% 이상을 국책기관이 떠받치는 구조에서 한도 확대만 반복한다면 부담은 한쪽에 더 쌓일 뿐이다.

정부도 민간은행 참여를 유도한 적이 있다. 지난해 무보의 중형 조선사 RG 특례보증 비율을 95%까지 높여 은행 부담을 낮췄지만 현장의 체감은 제한적이다. 지난해 4대 은행의 RG 잔액에서 중소형 조선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1%대에 불과했다. 이 같은 빈틈은 여전히 국책기관이 메우고 있다.

시중은행의 항변도 이유는 있다. 과거 STX 등 조선업 침체기에 대규모 RG 손실을 겪었고, 중소형 조선사는 대형사보다 재무 체력이 약하다. 생산적금융 관점에서도 인공지능(AI), 반도체, 데이터센터처럼 실적으로 잡기 쉽고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가 많다.

그럼에도 생산적금융을 말한다면 중소형 조선 RG를 계속 국책기관 몫으로만 둘 수는 없다. 돈 되는 산업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만 생산적금융은 아니다. 수주 기회가 있어도 금융이 막혀 계약이 닫히지 않는 곳, 그 병목을 푸는 게 생산적금융의 역할이다. 정부는 위험분담 구조를 더 정교하게 짜고 은행권도 그 틀 안에서 중소형 조선 RG 발급을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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