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노사 갈등 국면에서 꺼낸 말이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시장은 이 문장을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책임의 언어로 받아들였다. 최고 책임자가 위기 앞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기업 위기 대응에서 중요한 것은 늘 숫자만은 아니다. 실적, 주가, 자산 규모도 중요하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최고경영자가 어떤 언어로 시장과 구성원을 설득하느냐가 신뢰의 출발점이 된다. 특히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고금리, 공급망 재편, 인공지능(AI) 전환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지금은 더 그렇다.
최근 재계의 시선이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과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을 함께 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두 사람은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자산가다. 포브스가 발표한 ‘2026 대한민국 50대 부자’ 순위에서 이 회장은 자산 216억 달러로 1위에 올랐고, 김 회장은 99억 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둘 다 한국 자본시장의 정점에 선 인물이다.
그러나 위기 앞에서 시장이 본 장면은 달랐다. 이재용 회장은 총파업 가능성이 거론되며 반도체 공급망과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이 우려되는 국면에서 본인의 책임을 먼저 말했다. “비바람은 내가 맞겠다”는 말은 노사 갈등의 모든 쟁점을 단번에 해결하는 처방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최고 책임자가 위기의 한복판에 서겠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반면 홈플러스 유동성 위기를 둘러싼 김병주 회장의 대응은 결이 달랐다. 김 회장은 국정감사 등에서 전문경영인 중심 경영 체제를 강조하며 구체적인 경영 판단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사모펀드 업계 논리로 보면 일견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투자자 자금과 포트폴리오 기업의 재무는 구분돼야 하고, 대주주 개인의 지급보증을 당연시하는 것은 자본시장 원칙과 맞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법적 책임의 유무만으로 시장의 불안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홈플러스의 자금난은 단순한 재무 이슈에 그치지 않는다. 급여 지급, 협력업체 대금, 점포 운영, 고용 안정까지 맞물린 문제다. 유통 대기업의 위기는 납품업체와 소비자, 지역 상권으로 번질 수 있다.
최근 브릿지론 협상 과정에서도 김 회장보다 MBK 김광일 부회장이 전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 협상은 당연히 전문경영진과 담당 임원이 맡을 수 있다. 그러나 위기의 무게를 누가 지고 있는지,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신뢰를 줄 것인지 등 시장이 MBK 경영진에 기대하던 모습은 아니었다.
물론 삼성전자와 홈플러스, 오너 경영과 사모펀드 경영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산업도 다르고 지배구조도 다르며 책임의 법적 범위도 다르다. 하지만 시장 신뢰라는 관점에서는 공통된 질문이 남는다. 과연 위기 상황에서 최고경영진이 조직, 이해관계자 그리고 시장을 설득할 수 있을까. 자본의 논리와 책임 경영은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큰 자본일수록 더 정교한 설명과 더 분명한 책임의 언어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