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면적으로는 전쟁 위험이 큰 해역을 지나는 선박에 보험을 제공하는 서비스지만, 일각에서는 정상적인 보험이라기보다 사실상 ‘디지털 통행권’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특히 미국 제재 망을 우회하는 새로운 결제 체계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비트코인이 전쟁과 지정학 리스크의 한복판에 들어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 세이프(Hormuz Safe)’라는 이름의 비트코인 기반 해상보험 서비스를 시작했다. 대상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화물선이다. 보험료는 비트코인으로 결제되며, 이란 정부는 해당 서비스를 통해 100억 달러(약 15조 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보험 서비스의 구체적인 운영 구조와 보상 체계, 실제 이용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보통 해상보험은 사고·침몰·충돌·전쟁·해적 위험 등에 대비해 손실을 보상하는 금융 상품이다. 반면 이번 서비스는 ‘호르무즈 해협 안전 통과’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 위원장인 에브라힘 아지지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지정 항로 운영 체계가 조만간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문 서비스에 대해 수수료가 부과될 것이며, 이란과 협력하는 상선과 당사자들만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르무즈 세이프가 일반 보험보다는 특정 항로 이용과 통행 관리 체계와 연결된 서비스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미국과 이스라엘이 2월 28일 이란 관련 공습을 시작한 이후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통제를 강화해왔다. 이 과정에서 이란 정부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지정 항로 운영과 통행료 부과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부 선박은 이란 해안 인근 지정 항로를 이용하는 대가로 최대 200만달러(약 30억원)를 요구받기도 했다.
이란 측이 지정 항로 운영과 수수료 부과 방침을 함께 언급하면서 시장에서는 사실상 ‘디지털 통행권’ 구조가 형성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란은 미국 제재로 국제 금융결제망(SWIFT) 접근과 달러 기반 해외 금융 거래에 오랫동안 제약을 받아왔다. 이런 환경에서 중앙은행이나 국제 은행 망을 거치지 않고 이동 가능한 비트코인은 제재국 입장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비트코인은 미국 금융 시스템 바깥에서도 거래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호르무즈 세이프가 단순 보험 서비스가 아니라 미국 제재 환경 속 새로운 디지털 결제 실험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다만 실제 글로벌 해운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외국 선주나 보험사가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높은 가격 변동성 역시 한계로 지적된다. 보험은 사고 발생 시 안정적인 보상 가치 유지가 중요한데,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 폭이 크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시점에 따라 보상 가치가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국제 해운 보험 결제 수단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상 보안업체들과 외신들에 따르면 일부 선박 운영사들에는 “가상자산으로 통행 수수료를 지급하면 호르무즈 해협 안전 통과를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발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상 보안업체들은 이를 이란 당국을 사칭한 사기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란 측 보험 서비스와 비공식 통행료 논란, 가상자산 사기 메시지가 동시에 등장하면서 해운업계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 공식 서비스이고 무엇이 사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미군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 1500척 이상의 상선이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대기 중인 상태다.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확대될 경우 선박 보험료와 전쟁위험 보험료가 오르고, 이는 다시 해운료와 원유 운송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핵심 해상 요충지다. 이곳의 긴장이 커질 경우 국제유가와 LNG 가격, 수입물가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때 비트코인은 국가와 은행의 통제를 벗어난 ‘탈중앙화 화폐’의 상징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그 비트코인이 보험료이자 통행권, 제재 우회 가능성이 거론되는 결제 수단, 심지어 가상자산 사기 수단으로까지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
전쟁과 제재, 해상 통제 리스크가 겹친 호르무즈 해협에서 비트코인은 이제 단순 투자 자산을 넘어 새로운 ‘통행 수단’ 역할까지 거론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