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세계 3위인데...우울한 대한민국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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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경제 선진국 아동·청소년의 신체·마음 건강 및 역량을 분석한 유니세프의 최신 보고서 ‘리포트 카드(Report Card) 20’. (사진제공=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한국 아동·청소년의 학업 능력은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마음 건강은 최하위권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유니세프는 전 세계 경제 선진국 아동·청소년의 신체·마음건강 및 역량을 분석한 보고서 ‘리포트 카드20: 불평등한 기회, 아동과 경제적 불평등’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유니세프의 공식 연구기관인 유니세프 이노첸티가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시리즈로, OECD 회원국을 포함한 경제 선진국 아동의 권리 현황을 비교·분석한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은 읽기·수학 등 기초 학업 능력을 평가한 역량 부문에서 41개국 중 3위를 기록했다. 반면 신체건강은 41개국 중 30위, 마음건강은 37개국 중 34위에 그쳤다. 한국 아동·청소년들이 공부는 잘하지만 몸과 마음은 지쳐 있는 것이다.

성적은 최상위권, 마음은 최하위권

▲유니세프 ‘리포트 카드 20’ 주요 지표. (사진=챗GPT AI 생성)
한국 아동·청소년의 마음 건강 지표는 특히 심각했다. 삶에 만족한다고 답한 아동·청소년 비율은 65%로 37개국 가운데 여섯 번째로 낮았다. 청소년 자살률도 높은 수준이었다. 15~19세 청소년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10.9명으로 40개국 중 다섯 번째로 높았다.

신체건강 지표 역시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한국의 신체건강 순위는 2020년 ‘리포트 카드16’에서 13위였지만, 2025년 ‘리포트 카드19’에서는 28위로 떨어졌다. 이번 조사에서는 30위까지 밀려났다. 불과 몇 년 사이 한국 아동·청소년의 몸과 마음 모두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단순히 일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학업 성취도는 높지만 삶의 만족도와 정신 건강 지표는 낮은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 전체의 교육 환경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잘하는 아이’는 늘었지만, ‘괜찮은 아이’는 줄었다

▲국내 ADHD 진료 현황. (사진=챗GPT AI 생성)
전문가들은 한국 아동·청소년의 마음 건강이 악화한 배경으로 과도한 학업 경쟁을 꼽는다. 영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선행학습, 초등학생 의대반, 중학교 수학을 미리 배우는 학원 일정 등은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경쟁 압박을 안긴다.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입시 경쟁의 출발선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아이들이 쉬거나 놀 시간은 줄어든다. 학교가 끝난 뒤에도 학원과 숙제가 이어지고, 주말마저 보충수업이나 시험 준비로 채워진다. 겉으로는 성실하고 문제없는 아이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불안과 우울을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의력 문제도 함께 주목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ADHD 진료비는 2020년 461억원에서 2024년 1909억원으로 314% 급증했다. 같은 기간 ADHD 환자 수는 7만9248명에서 26만251명으로 3.3배 늘었다. 2024년 기준 환자는 10대가 9만4233명으로 가장 많았고, 9세 이하도 5만6048명에 달했다.

ADHD는 주로 주의 산만, 과잉 행동, 충동성을 나타내고, 7세 이전 아동 초기에 발병한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사용 증가와 수면 부족, 신체활동 감소, 학업 스트레스가 아이들의 집중력과 감정 조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일부 현장에서는 성적을 높이기 위해 집중력 관련 약물을 오남용하는 사례까지 거론된다. 아이가 충분히 쉬고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 더 오래 집중하고 더 많이 공부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아이들을 더 몰아붙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SNS와 불평등이 키운 ‘조용한 고립’

▲경제적 불평등이 아동의 삶에 미치는 영향. (사진=챗GPT AI 생성)
아이들의 마음 건강을 흔드는 또 다른 요인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온라인 환경이다. 아이들은 늘 연결돼 있지만, 실제 관계에서는 더 외로워지고 있다. 친구와 직접 어울리는 시간은 줄어드는 반면, 온라인에서는 성적, 외모, 소비, 인간관계가 끊임없이 비교된다. 짧은 영상과 SNS 피드에 오래 노출될수록 집중력은 흔들리고, 자신만 뒤처진다는 감각은 커질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도 아동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유니세프 보고서는 경제 선진국에 살고 있다고 해서 모든 아동의 행복과 건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조사 대상 국가에서 상위 20% 소득 가구의 소득은 하위 20%보다 5배 이상 높았고, 아동 5명 중 1명은 기본적인 욕구조차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는 빈곤 상태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역시 가구 소득 수준에 따라 학업 성취도와 건강 상태에서 격차가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교육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사이의 차이는 아이들의 학업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불평등이 성적 격차를 만들고, 성적 격차가 다시 불안과 좌절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조미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경제 선진국에 산다고 해서 모든 아동의 행복과 건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이번 보고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특히 한국 아동이 겪는 신체·마음건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업 중심 사회에 대한 인식 개선과 함께 경제적 불평등이 아동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성적표 밖의 아이들을 봐야 할 때

▲공부하는 초등학생의 모습. (사진=챗GPT AI 생성)
한국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문제는 더 오래 앉아 있게 하고, 더 많은 문제를 풀게 하는 방식만으로는 아이들의 삶을 나아지게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성적표에는 드러나지 않는 수면, 운동, 친구 관계, 놀이, 정서적 안정감도 아이들의 성장에 중요한 요소다.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를 개인이나 가정의 책임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학교 안 심리 지원을 강화하고, 위기 학생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체활동을 늘리고, 디지털 사용 습관을 관리하며, 사교육 부담을 완화하는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지금 한국 사회가 아이들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더 잘하게 만들까”가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아이들이 무너지지 않고 잘 자라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공부는 세계 3위지만 마음 건강은 최하위권인 현실은, 한국 교실이 더 이상 성적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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