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시장개편, ‘빠르게’ 보다 ‘안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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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헌 마켓부장

자본시장은 늘 ‘속도’와 ‘안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최근 정부와 한국거래소가 주식 결제 주기를 T+2에서 T+1로 단축하고 거래시간 연장을 추진하는 등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기준에 맞추고 시장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 자체는 분명하다. 실제로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이 결제 주기를 단축하는 흐름에 발맞추는 것은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속도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의 방식’이다. 충분한 준비와 공감대 없이 밀어붙이는 개편은 오히려 시장의 체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이번 제도 변화는 단순한 규정 변경이 아니라 증권사 전산 시스템, 리스크 관리 체계, 자금 운용 방식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변화다. 그만큼 촘촘한 준비가 요구된다.

현장의 온도는 기대보다 우려에 가깝다. 대형 증권사들은 이미 상당한 IT 인프라와 인력을 갖추고 있어 비교적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소형 증권사들은 상황이 다르다. 개발 인력과 비용, 테스트 환경 모두 제한적인 상황에서 동일한 속도로 제도 전환을 요구받는 것은 사실상 ‘같은 출발선에 서지 않은 경주’와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일부 증권사에서는 시스템 오류나 결제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자본시장에서 사고는 단순한 개별 회사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오류 하나가 연쇄적인 신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국내 증권사의 ‘유령주식 배당 사고’는 시스템 통제 실패가 얼마나 큰 파장을 낳는지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당시 한 증권사의 내부 오류가 시장 전반의 신뢰를 흔들었고, 투자자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제도 개편이 촉발한 시스템 불안이 반복된다면 그 파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고민은 ‘속도의 고립’이다. 자본시장은 철저히 글로벌 자금의 흐름 위에 서 있다. 주요 시장과의 정합성을 맞추는 것은 중요하지만, 아시아 시장 내에서 한국만 과도하게 앞서나가는 구조는 또 다른 리스크를 낳을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거래 환경과 결제 구조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가 선진화됐다는 평가보다 ‘다루기 까다로운 시장’이라는 인식이 먼저 자리 잡는다면 이는 의도치 않은 역효과다.

투자계의 대부 워런 버핏은 “위험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를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제도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시장 참여자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속도는 곧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 조절’이 아니라 ‘속도의 설계’다. 단계적 도입과 충분한 테스트 기간, 증권사별 준비 상황을 반영한 유연한 적용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중소형 증권사들에 대한 지원책 마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공동 테스트베드 구축, 비용 지원, 기술 협력 체계 등을 통해 최소한의 대응 역량을 확보하도록 돕지 않는다면 시장의 균형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자본시장은 단순한 거래의 장이 아니라 신뢰의 집합체다. 제도 개편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 그 출발점 역시 신뢰여야 한다. 속도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질주는 결국 더 큰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시장’이 아니라 ‘더 단단한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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