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철주 회장 “80년 기술 갈아엎을 때”⋯ ‘반도체 판’ 재정의 [기술 속국 탈출기①]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산업이 빠르게 확장되며 반도체를 포함한 다양한 제조업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완제품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그 기반에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의 기술력이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는 물론 로봇, 디스플레이 등 산업 전반에서 소부장은 기술 한계를 돌파하는 출발점이자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본지는 다양한 산업의 소부장 기업 대표들을 릴레이로 만나 기술 변화의 흐름과 시장에 대한 진단을 들어본다. 현장에서 바라본 기회와 위기, 그리고 산업 생태계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짚어본다.

美 공급망 재편 장벽 날로 높여⋯동맹ㆍ비동맹 블록화 흐름 뚜렷
미세화 중심 경쟁 구조적 한걔⋯1등 없는 시대, 리스크 감당해야
3-5족 화합물로 반도체 구조 혁신⋯메모리-로직 통합 구조 전환 가속
장비 투자 사이클 본격 반등 예고, 선행기술 축적 소부장 역할 커져야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경기 용인에 위치한 R&D 센터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이제는 더 강한 경쟁자들이 우리를 앞지르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뒤를 쫓는 방식으로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 남이 만든 시장을 따라가는 기술 로드맵이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만드는 로드맵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장비 세계화의 상징인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의 문제의식은 기술 자체보다 ‘출발선’에 가까웠다. 개별 공정이나 장비의 성능이라는 지엽적 논의를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서 있는 출발선 그 자체를 향하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그가 반복한 건 특정 공정이나 장비가 아니라, 한국 산업이 여전히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었다. 문제의식의 본질은 기술력의 부족이 아닌,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고 있는 ‘구태의연한 관성’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 최초의 상품과 시장을 정의하는 ‘시장 창출자’로 거듭나야 한다는 통찰력에서 비롯된 발언이다.

“모방경제 끝났다”…1등 없는 시대, 리스크 감당해야

황 회장은 최근 주성엔지니어링 용인 R&D센터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우리는 1960~1970년대부터 모방경제로 쫓아왔다. 그때는 1등이 있었고, 우리는 그 1등을 따라가면 됐고 리스크를 지지 않아도 됐다”면서 “그런데 지금은 1등이 사라졌다. 이제는 우리가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산업 환경을 “우리가 1등이 됐을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과거에는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선두 기업의 기술과 시장을 따라가는 전략이 통했지만, 지금은 그 전제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글로벌 산업 질서의 급격한 재편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나서며 관세와 수출 규제 등 각종 장벽을 높이고 있고,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동맹과 비동맹을 가르는 블록화 흐름도 뚜렷해졌다. ‘따라잡기’가 통하던 환경이 사라진 자리에서 스스로 기준을 만들지 못하면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압박이 커졌다는 의미다.

“기준 못 만든다”…성장 가로막는 구조적 한계 지적

그가 특히 문제로 지적한 건 ‘기준’의 부재였다. 황 회장은 “우리는 과거의 기준으로 더 잘하려고만 하고 더 싸게,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기준은 못 만들고 있다”면서 “새로운 성장은 기존 기준 안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주성엔지니어링이 추진하는 기술 방향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는 지금까지 반도체 산업을 지배해 온 ‘미세화 중심 경쟁’이 구조적인 한계에 도달했다고 봤다.

선폭을 줄여 집적도를 높이는 미세화는 그동안 생산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핵심 수단이었지만, 공정이 나노미터(nm·1nm=10억분의 1m) 단위로 진입하면서 비용과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초고가 설비 의존도가 커지며 투자 부담이 급격히 늘었고, 발열과 전력 소모 문제도 더 이상 공정 개선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같은 면적에 더 많이 넣는 방식만으로는 성능 향상의 한계가 뚜렷해진 만큼 소재와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황 회장은 “지금까지는 실리콘 기판 위에서 선폭을 줄이면서 집을 많이 짓는 방식으로 단독주택을 계속 늘려 마을을 키워오는 식이었다”면서 “이제는 그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산성과 수익성을 크게 올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 한계를 ‘공간의 문제’로 정의했다. 한정된 웨이퍼 위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넣는 방식은 이미 물리적·경제적 한계에 근접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이어 “우리는 같은 공간에 아파트를 짓는 기술을 만들고 있다”며 “단순히 집을 더 많이 짓는 게 아니라,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AI 반도체 구조는 머리와 뇌를 따로 만든 다음에 붙이는 방식과 비슷하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머리와 뇌가 함께 만들어지듯 반도체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문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메모리와 로직이 따로 움직이면 안 된다.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메모리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작동해야 한다”며 “단순히 붙이는 수준으로는 한계가 있고 처음부터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3-5족 화합물로 돌파…“개선이 아니라 구조 뒤집는 것”

이 같은 구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 3-5족 화합물 반도체 기술이다. 3-5족(III-V) 화합물 반도체는 실리콘 반도체 대비 전자 이동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 실리콘의 전자 이동도가 약 1400㎠/Vs 수준인 반면, 해당 소재는 최대 8500㎠/Vs까지 구현이 가능하다. 정공 이동도 역시 600㎠/Vs 수준에서 최대 2000㎠/Vs로 크게 개선된다. 속도는 빨라지고 소비전력과 발열은 줄어드는 구조다. AI 연산에 필요한 고성능·저전력 특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소재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기술은 오랜 기간 ‘이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현실에서는 쓰기 어려운 기술’로 남아 있었다. 기존 화합물 반도체는 1000도 이상의 고온 공정이 필요했고, 특정 기판에서만 구현이 가능했다. 불순물도 많고 공정도 복잡했다. 좋은 기술인 건 알지만 실제로 쓰기 어려운 상태였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이투데이와 인터뷰에서 3-5족 화합물 반도체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주성엔지니어링은 이를 장비와 공정 방식의 전환 해결했다. 낮은 온도에서 하부 기판의 소재와 무관하게 불순물 없이 박막 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황 회장은 이를 “트랜지스터 발명 이후 80년 기술을 갈아엎는 수준”이라며 “속도, 소비전력, 발열, 비용 구조까지 다 바뀐다.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바뀌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AI 전력난 현실화…고효율 태양광으로 해법 모색

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문제는 자연스럽게 에너지로 논의가 이어졌다. 황 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성장 배경에 ‘전력’이라는 변수도 함께 봐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원전은 짓는 데만 10년 이상 걸리는데 데이터센터는 지금 당장 필요하다”며 “가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태양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기존 태양광 기술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선을 그었다. 황 회장은 “과거의 태양광이 아니라 35% 이상의 발전 효율을 가진 고효율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고효율 태양광 시장 역시 매우 빠른 속도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양광 시장의 성장 속도가 반도체 장비를 넘어설 가능성에 대해서도 그는 여지를 열어뒀다. 황 회장은 “반도체는 모든 산업 기술의 기초이고, 디스플레이는 반도체 기술로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기술이며, 태양광은 빛을 전기로 바꾸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세 산업은 서로 다른 시장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원리 위에서 움직인다”며 “반도체라는 원천 기술을 확보하면 이를 기반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광 전반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주성엔지니어링의 확장 전략도 설명했다. 황 회장은 “원천 기초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라며 “세 산업을 동시에 아우르며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앞서 황 회장이 설명한 3-5족 화합물 반도체 기술 역시 유리기판이나 금속기판 등 다양한 소재 위에서도 구현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광 간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확장될 수 있다.

피지컬 AI로 확장…“에너지 없는 로봇은 고철”

이 같은 기술 통합의 최종 단계로 그는 ‘피지컬 AI’를 언급했다. 산업의 발전 과정을 사람의 성장에 빗대 설명하며, 반도체·디스플레이·로봇이 하나의 축으로 결합되는 흐름을 강조했다. 황 회장은 “산업의 발전과 사람의 성장은 같다”며 “사람이 육체적으로 성장한 뒤 정신적으로 완성되듯, 산업도 제조 기반 위에 정보기술(IT)과 AI가 더해지며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AI는 두뇌이고, 디스플레이는 눈이며, 로봇은 몸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이 경기 용인에 위치한 R&D 센터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투데이DB)

그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짚었다. 황 회장은 “로봇이 일을 하면서 동시에 발전하고 충전해야 한다”며 “에너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로봇도 고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로봇 표면에 태양광을 붙이는 방식이 가능하다”며 “이게 로봇 발전의 마지막 단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과 경쟁, 결국 속도”…추격 아닌 선행 강조

시장 경쟁에 대한 시각도 냉정했다. 단순한 ‘추격’ 구도가 아니라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황 회장은 “우리 인구는 5000만명이고 중국은 15억명인데, 우리가 만든 기술을 도둑맞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그들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고 이제는 우리를 이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경쟁에서 중요한 건 속도”라고 강조했다.

과거와 달라진 경쟁 환경에서 단순히 기술을 지키는 문제를 넘어, 더 빠르게 개발하고 먼저 시장에 내놓는 쪽이 경쟁력을 갖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인식이다. 특히 상대의 추격을 전제로 하기보다, 그보다 앞선 속도로 기술을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특히 ‘속도’가 정책과 산업 전략의 핵심 기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 격차가 벌어지는 시점과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빨라진 만큼, 의사결정과 실행의 속도가 경쟁력 그 자체가 됐다는 인식이다. 황 회장은 “과학과 기술은 누가 먼저 하느냐의 경쟁이다. 앞서가는 기술을 더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개발 기간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연구개발(R&D)과 투자, 양산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부장 역할 전환…“선행 기술로 산업 이끈다”

소부장 산업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존과는 다른 접근을 주문했다. 그동안은 대기업이 방향을 제시하고 소부장 기업이 이를 따라가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선행 기술의 출발점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과거에는 대기업이 먼저 가고 소부장이 따라가는 구조였다. 이제는 반대가 돼야 한다. 소부장이 먼저 연구개발을 완료하고, 제조기업이 이를 상용화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기술 발전 방식의 전환과도 맞닿아 있다. 미세화 중심의 추격형 성장에서는 대기업 중심의 투자와 양산 경험이 중요했지만, 새로운 소재와 공정이 요구되는 단계에서는 초기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소부장 기업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현재 SK하이닉스 동반성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0일 개최된 SK하이닉스 ‘2026 동반성장협의회 정기총회’ 모습. (사진-SK하이닉스 뉴스룸)

황 회장은 “소부장이 앞서가지 않으면 진짜 1등이 될 수 없다. 제조기업이 1등이 되려면 소부장이 먼저 앞서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의 선행 기술 축적이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인식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금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황 회장은 “정책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과 시스템의 문제”라며 “무엇이 먼저인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지원 확대가 아니라, 연구개발과 양산, 그리고 기업 간 협력 구조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특히 선행 기술을 빠르게 검증하고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지 않으면,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장비업계 업황 반등 초입…“발주 곧 본격화”

주성엔지니어링을 비롯한 반도체 장비 업계의 업황은 이제 본격적인 상승 구간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 나온다. 아직까지는 투자 사이클의 초입에 머물러 있지만, 주요 고객사들의 신규 팹 건설이 가시화되면서 장비 수요 역시 뒤따라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황 회장은 “작년까지는 고객사들이 장비 발주를 하지 않았다”며 “팹 계획은 많았지만 아직 투자 시기가 아니었고, 기존 인프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단계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반도체 업황 회복 국면에서도 실제 장비 발주로 이어지기까지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이러한 흐름은 조만간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봤다. 황 회장은 “용인 클러스터와 미국 공장 등 신규 투자가 본격화되면 장비 발주는 한꺼번에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AI 수요 대응을 위해 생산능력 확대에 나서고 있는 만큼, 장비 업계에도 본격적인 수요 증가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단순한 업황 회복을 넘어 구조적인 성장 사이클로 이어질 가능성도 시사한다.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이에 따른 메모리 및 첨단 공정 수요가 지속되는 한, 장비 투자는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축적된 투자 계획이 순차적으로 집행되면서 장비 발주가 ‘지연된 수요’ 형태로 한꺼번에 분출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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