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균형 잃은 청약제도 대폭 손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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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제도는 무주택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겠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취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청약은 점점 그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제도는 복잡해졌고, 기회는 특정 집단에 더 집중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특별공급의 확대다. 신혼부부, 생애최초에 이어 이제는 신생아특별공급까지 신설되면서 특별공급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문제는 그만큼 일반공급의 몫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물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특별공급이 늘어나면, 결국 일반공급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별공급에 일반 무주택자 상실감

이 구조 속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계층이 바로 40~50대 무주택자들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청약통장을 유지하며 점수를 쌓아왔다. 무주택 기간을 지키고, 부양가족을 늘리고, 제도가 요구하는 기준을 성실하게 따라온 사람들이다. 청약제도를 믿고 준비해온 대표적 집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특별공급 비중이 커지면서 일반공급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가점제 중심 구조에서는 이미 상위권 점수대가 아니면 당첨 가능성이 극히 낮아졌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사람들이 오히려 기회를 얻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신뢰다. 정책은 시대 변화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누군가의 준비와 노력을 무력화하는 방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청약제도를 믿고 수십 년을 기다려온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운 제도 변화는 단순한 불이익을 넘어 신뢰의 붕괴로 이어진다.

청약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다. 한 가정의 미래 계획이 걸린 문제다. 그렇기에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청약제도는 계속해서 새로운 트랙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 결과, 제도를 오래 지켜온 사람일수록 상대적으로 불리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신혼부부나 출산 가구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 사회적 방향성으로서 충분히 의미 있는 정책이다. 하지만 그 지원이 또 다른 무주택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재분배의 불균형이 된다. 특정 계층을 돕는 정책이 다른 계층의 기회를 과도하게 잠식해서는 안 된다. 출산을 장려하는 방향은 대출이나 세금으로 충분히 ‘배려’해 줄 수 있다.

공정성 유지해야 신뢰 잃지 않아

이제는 균형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특별공급의 취지를 살리되, 일반공급의 기반도 함께 지켜야 한다. 오랜 기간 제도를 신뢰하고 준비해온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기회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청약제도가 여전히 ‘희망의 통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지금의 청약제도는 점점 ‘그들만의 리그’로 변해가고 있다. 정보와 조건, 타이밍을 모두 갖춘 일부에게 유리한 구조다. 그러나 청약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집이 필요한 사람이 기회를 얻는 것, 그것이 출발점이었다. 그 출발점을 잊는 순간, 청약은 더 이상 공정한 제도가 아니다. 그리고 공정하지 않은 제도는 결국 신뢰를 잃는다. 누구를 위한 청약인가. 전래 동화 ‘당나귀를 팔러 간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서 충분히 교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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