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 회생의 분기점이 메리츠금융그룹의 손에 놓였다. 홈플러스가 이번 주 법원 판단을 앞둔 가운데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그룹이 2000억원 안팎의 긴급운영자금대출(DIP 금융)을 지원하지 않으면 홈플러스는 파산 가능성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파산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자본시장 사상 한진해운 이후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홈플러스 회생의 핵심을 2000억원 규모로 거론되는 DIP 금융으로 보고 있다. DIP 금융은 회생기업이 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신규 자금을 공급하는 운영자금이다. 홈플러스 입장에서는 익스프레스 매각대금이 들어오기 전까지 본체를 버티게 할 브릿지 자금에 가깝다. DIP가 투입되면 매각과 구조조정을 이어갈 시간을 벌 수 있는 반면, 자금 지원이 막히면 법원의 회생절차 연장 명분도 약해진다.
홈플러스는 약 120개 점포 가운데 40개 안팎의 만성 적자 점포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으로 파악된다. 이들 점포가 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회생의 핵심은 외형 확대가 아니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이다. 문제는 점포 정리까지 최대 1년 가량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 임금과 물품대금, 월세 등 현금 지출이 계속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월 인건비만 약 500억원 수준에 이른다. MBK파트너스가 회생 전후로 투입한 약 4000억원 자금도 상당 부분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익스프레스 매각이 성사되더라도 거래 종결과 대금 유입까지는 2개월 안팎이 걸린다. 당장 필요한 2000억원은 넉넉한 구조조정 자금이라기보다 익스프레스 매각 대금이 들어오기 전까지 버티기 위한 최소 생존 자금에 가깝다.
서울회생법원은 이번 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 DIP 금융, 회생절차 연장 등에 대한 채권자협의회 의견을 조회할 예정이다. 채권자협의회는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메리츠캐피탈, 롯데카드, 국민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표 채권자는 메리츠증권이다. 사실상 메리츠그룹의 판단이 홈플러스의 생사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그룹이 DIP 금융 지원에 반대하면 법원이 회생절차를 연장할 명분도 약해진다. 다음 달 4일로 예정된 회생계획안 가결 시한이 연장되지 않으면 홈플러스 본체는 파산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본체가 무너지면 슈퍼마켓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도 함께 흔들린다.
시장에서는 익스프레스 매각만으로 본체 회생을 이어가기에는 자금 공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림그룹이 본입찰에서 제출한 영업양수도 계약서에는 계약 상대방이 파산할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본체와 물류·유통망 일부도 공유하고 있다. 본체 영업 지속이 익스프레스 매각의 선결 조건에 포함된 셈이다.
메리츠의 고민도 깊다. DIP 금융을 지원하면 회생절차 연장과 매각 완주 가능성을 열 수 있지만, 추가 자금 투입에 따른 회수 불확실성을 떠안아야 한다. 반대로 지원을 거절하고 담보권 행사에 나서면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메리츠가 담보로 잡은 홈플러스 매장에는 소상공인 임차 점포들이 입점해 있다. 공매 절차가 진행될 경우 임차인 갈등과 강제집행 논란이 불가피하다.
메리츠금융그룹과 한진그룹의 연결고리도 시장의 관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은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막내아들이다. 한진해운 파산 당시 한진그룹을 이끌던 고 조양호 전 회장은 조 회장의 큰형이다. 한진해운 파산의 기억이 9년 만에 다시 조씨 가문을 향하는 이유다.
채무 규모만 놓고 보면 홈플러스의 부담은 한진해운에 못지않다. 한진해운은 2016년 회생절차를 신청했지만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높다는 판단을 받았고, 2017년 2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당시 한진해운 채권신고액 가운데 회사가 시인한 금액은 3조4185억원, 부인액은 28조4626억원이었다. 홈플러스는 최근 부채총계가 7조원대다. 단순 장부상 부채 규모로는 홈플러스가 한진해운의 채무를 크게 웃돈다.
여기에 홈플러스는 금융부채와 리스부채, 상거래채권까지 얽힌 구조여서 파산 시 충격은 단순 금융권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협력업체, 임차 점포, 고용, 부동산 금융시장까지 파장이 번질 수 있다. 메리츠가 홈플러스의 DIP 금융을 거절할 경우 이는 한진해운 이후 최대 규모의 파산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