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시간의 벽을 깼다
모든 기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첫 문장. 근대 올림픽 부활과 함께 탄생한 마라톤의 약 130년 역사상 가질 수 없는 숫자였는데요. 42.195㎞를 2시간 이내에 달리는 건 그저 ‘불가능’으로만 여겨졌죠. 그런데 역사상 위대한 그 숫자 ‘1시간 59분 30초’가 탄생하고야 말았습니다.
26일(한국시간) 2026 런던 마라톤 남자부가 열린 버킹엄 궁전 앞 광장은 인류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역사의 현장이 되었는데요. 케냐의 사바스티안 사웨가 42.195km를 1시간 59분 30초 만에 완주하며 2시간 이내 완주 시대를 열었습니다. 2023년 켈빈 킵툼이 세운 2시간 0분 35초의 세계 기록을 65초 앞당긴 성과인데요. 소수점 단위의 사투를 벌이는 마라톤 판도에서 정말 유례를 찾기 힘든 단축 기록이죠.
세계육상연맹은 현장에서 즉시 기록을 승인했는데요. 이로써 2시간이라는 시간적 장벽은 더 이상 꿈의 기록이 아닌 정복된 고지가 됐습니다.

42.195㎞를 2시간 이내에 달렸다는 것. 감이 오시나요? 사웨의 기록을 물리적인 수치로 보면 평균 시속은 21.19㎞, 1㎞당 페이스는 2분 50초인데요. 이를 일상적인 운동과 비교해 봅시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러닝머신의 최고 속도가 시속 20㎞ 내외인데요. 단 1분도 버티기 힘든 그 최고 속도로 2시간 내내 달린 셈이죠.
거리 단위로 쪼개면 사웨는 100m를 평균 약 17.0초에 주파하는 페이스입니다. 성인 남성이 단 100m를 전력 질주해야 나오는 기록이죠. 이것을 사웨는 단 한 번의 멈춤 없이 422번 연속으로 수행한건데요. 이는 한강에서 기분 좋은 라이딩을 즐기는 자전거들도 추월할 수 있는 속도입니다.
특히 그는 전반 하프를 1시간 00분 29초에 통과한 뒤 후반 하프를 59분 01초에 주파하는 ‘네거티브 스플릿(Negative Split)’을 성공시켰는데요. 앞서 그 빠른 속도에도 불구, 체력 고갈 지점인 30㎞ 이후에 오히려 스피드를 높이는 경이로운 체력을 선보였죠.
사실 2시간 내 기록은 ‘비공식’으로 남아있긴 합니다. 엘리우드 킵초게가 2019년 페이스 메이커 그룹을 두고 진행된 비공인 이벤트에서 기록한 바 있죠. 그러나 세계육상연맹이 인정하는 공식 대회가 아닌데다 총 41명의 페이스메이커를 동원하는 등 규정도 따르지 않아서 공식 세계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죠. 하지만 그런 킵초게의 기록인 1시간 59분 40초보다도 사웨는 무려 10초나 빠릅니다.

사웨는 마라톤 무대에서 매우 익숙한 이름은 아닌데요. 2022년 1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비야 하프 마라톤에서 두 번째 출전 만에 59분 02초라는 경이로운 대회 신기록을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죠. 기세를 몰아 2023년 세계 도로 달리기 선수권 하프 마라톤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풀코스로 전향한 그의 기록은 더욱 빛났는데요. 2024년 발렌시아 마라톤 데뷔전에서 2시간 02분 05초라는 역대 최고 수준의 데뷔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 사웨는 2년 뒤인 런던 마라톤에서 ‘서브2(2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라는 고지에 오른 거죠.
거기다 사웨는 육상계의 고질적인 약물 논란 속에서도 육상청렴기구(AIU)의 엄격한 상시 도핑 테스트를 자처해온 ‘클린 러너’의 대명사입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수십 회의 불시 검사를 모두 통과한 사웨였기에 그 기록은 더 빛이 났는데요.

이 숫자가 새겨진 ‘런던 올림픽’조차 그저 완벽하죠. 런던 마라톤은 세계 마라톤 메이저(WMM)가 주관하는 최고의 무대인데요. 런던 마라톤은 전 세계 100만 명 이상의 러너가 참가를 신청하고 그중 단 5만 명만이 런던 런웨이에 서는 대회입니다. 게다가 2026년은 호주 시드니 마라톤이 정식 합류하며 기존 6대 메이저(도쿄, 보스턴, 런던, 베를린, 시카고, 뉴욕)에서 7대 메이저 체제로 확장된 첫해이기도 하죠.
사웨가 인류의 새 시대를 열었지만, 아쉽게도 한국 마라톤의 시계는 여전히 2000년에 멈춰 서 있는데요. 이봉주가 세운 한국 기록 2시간 07분 20초는 26년째 깨지지 않는 성역이 됐죠. 2위의 기록 또한 1998년 이봉주의 2시간 07분 44초입니다.
엘리트 기록 정체와는 달리 국내 러닝 현장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데요. 생활체육 시장은 이른바 ‘천만 러너’ 시대에 들어섰죠. 세대를 뛰어넘은 ‘러닝 크루’ 문화가 확산되며 가장 트렌디한 커뮤니티 스포츠로 자리 잡았는데요.
스마트워치와 러닝 앱의 보급도 흐름을 바꿨죠. 일반 참가자들도 1㎞마다 페이스와 심박수, 기록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는 것이 진짜 일상이 됐는데요. 직접 10㎞ 이상의 레이스를 뛰어보고 기록 단축의 어려움을 체감한 이들이 많아질수록, 사웨가 보여준 1km당 2분 50초 안팎의 페이스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수준인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고 있죠. 사웨가 신은 아디다스사의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3 신발에도 관심이 뜨거운데요. 그만큼 그의 기록을 향한 관심과 경외감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에게 기록 경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웨가 만든 이 대기록. 누군가에겐 성역, 누군가에겐 존경, 또 다른 누군가에겐 도전이 될 숫자. 또다른 ‘벽’의 등장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