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지형도 흔드는 수싸움⋯한화ㆍ풍산, 탄약 빅딜 '시너지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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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美 아칸소 탄약공장 구축…인수 시 ‘무기+탄약’ 시너지 기대
전세계 군비 확대·155mm 포탄 부족…탄약 공급망 가치 급부상

풍산의 기습적인 철회로 한화그룹과의 탄약 사업 딜이 일단 멈췄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랭한 결렬보다는 고도의 ‘전략적 후퇴’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글로벌 군비 증강과 탄약 쇼티지(공급 부족)가 상수로 자리 잡은 지금, 풍산의 독보적 생산 역량과 한화의 글로벌 방산 플랫폼은 거부하기 힘든 ‘운명적 결합’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철회는 몸값을 극대화하려는 풍산과 실리를 챙기려는 한화 사이의 치열한 기싸움이자, 더 큰 시너지를 위한 전략적 숨 고르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풍산은 방산 사업 매각 추진을 공시한 지 엿새 만에 돌연 매각 의사를 철회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지난 9일 “방산 경쟁력 강화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풍산의 탄약사업부문을 포함한 다양한 사업 기회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풍산 방산부문에 대한 인수 검토는 중단됐다”고 공시했다. 짧은 기간 내 협상이 중단된 배경을 두고 업계에서는 양측이 가격과 거래 구조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가 풍산에 관심을 보인 배경은 분명하다. 한화는 미국 아칸소주에 탄약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여기에 국내 유일 탄약 전문업체로 꼽히는 풍산의 기술과 생산능력이 더해지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을 겨냥한 탄약 공급망 구축이 가능해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K9 자주포 수출을 확대하는 상황에서 포탄까지 묶어 공급하는 ‘무기체계+탄약’ 패키지 전략도 강화할 수 있다.

시장 환경도 한화의 계산을 뒷받침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024년 2조7180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연속 증가했고, 이 기간 증가율은 37%에 달했다. 특히 유럽 군사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2015년 대비 83% 늘었다.

탄약 수요는 더 가파르다. 전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155㎜ 포탄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 부족의 상징이 됐다. 미국 육군은 2022년 월 1만5000발 수준이던 155㎜ 포탄 생산량을 2025년 중반 월 4만발 수준까지 끌어올렸고, 2026년 중반까지 월 10만발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155㎜ 포탄 생산 확대 계약과 설비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유럽도 상황은 비슷하다. 유럽연합은 탄약생산지원법(ASAP)을 통해 155㎜ 포탄 연간 생산능력을 200만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각국이 탄약 재고와 생산라인을 줄였던 탓에, 현재는 수요 증가 속도를 공급망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기존 탄약 생산 인프라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전략적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풍산은 이 같은 시장에서 희소성이 큰 회사다. 방산 부문은 소구경부터 대구경 탄약까지 생산하는 국내 핵심 업체이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도 K9 자주포용 탄약 공급망에서 접점이 있다. 특히 최근 풍산그룹 류진 회장의 장남인 로이스 류 씨가 미국 생산법인 PMX 부사장직에서 물러난 점도 시장의 해석을 자극하고 있다.

결국 가격과 조건이 다시 맞춰지면 언제든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풍산을 포함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한화는 다양한 M&A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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