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성 핵시설’ 언급 여파로 미국이 대북 위성정보 공유를 일부 제한한 가운데 주한미군사령관이 국방장관을 찾아와 항의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정보공유를 제한한 미국에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 사태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군 관계자는 21일 일부 언론을 통해 "이달 초부터 미측이 위성을 통해 수집한 일부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제한된 정보는) 북한의 일부 기술 관련 정보들"이라고 밝혔다. 전날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던 하루 50~100장 분량의 대북 첩보 공유를 갑자기 중단했다”고 주장하는 등 의혹이 불거졌는데 군 당국이 정보 공유 제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발단은 정 장관이 지난달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 발언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3월 2일 이사회에서 한 보고 중에 굉장한 심각한 보고가 있다"며 "지금 영변과 구성, 강선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고 이란의 농축 우라늄은 (농축률이) 60%인데 비해 북은 90% 무기급 우라늄을 만든다고 보고했다"고 말했다. 평안북도 구성시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그동안 한미 정보 당국이 존재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곳이다. 그로시 사무총장 역시 해당 이사회 보고에서 구성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이달 초 미측이 정 장관의 구성 발언 관련 배경을 물으며 항의했고 통일부가 “공개 정보에 기초한 언급”이라며 “충분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정보공유 제한이라는 이례적 조치에 나섰다.
최근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 정 장관의 '구성 핵시설' 언급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만약 정말로 동맹국의 최고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을 직접 찾아가 강력히 항의했다면 정 장관의 발언이 얼마나 심각한 기밀 유출이었는지 증명하는 척도"라며 “국방부가 직접 밝히라”고 촉구했다.
이날 오전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정빛나 대변인은 안 장관이 이번 사안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한미 간 긴밀한 정보 공유체계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고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씀드린다”고 답했다.
사태 수습을 위해 양측 간 소통은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국방부 전직 고위 관계자는 “양국 국방장관이 통화를 하든 주미대사관에서 일을 하든 한미 고위급이 협의를 해서 풀어야 한다”며 “한미 간 갈등 사안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합의를 해서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했다. 한 전직 외교관도 “미국에서 원하는 바를 두고 한국이 성의를 좀 보여야 될 것”이라며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이달 초 한국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정 장관의 ‘구성’ 발언을 포함해 비무장지대(DMZ)법, 서해상 미·중 전투기 대치 사건 등 4~5개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간 정보 관련 소통에 대해서는 확인 드릴 수 없다”면서도 “정보공유 뿐만 아니라 모든 사안에 대해 긴밀하게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의 대북 정보공유 제한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보안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 장관 발언이 미국 측이 제공한 정보 유출에 따른 것이란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정 장관 ‘구성 핵시설’ 발언 이전에 구성 핵시설 존재 사실은 각종 논문과 언론 보도로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점은 명백한 팩트”라며 “대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했다.
야당은 대통령이 문제를 키운다며 공세에 나섰다.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잘못된 장관 감싸기는 오히려 문제를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의 설명은 미국이 왜 정 장관의 발언에 항의하고 이후 우리와의 정보 공유를 제한하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답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이 하루 약 50~100쪽에 달하는 대북 정보를 일주일째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는 여권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사안을 점검하고 오해를 풀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아닌 장관을 공개적으로 감싸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욱 키우는 무책임한 태도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