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VC가 보여준 ‘숏폼 쇼핑’의 시대 [이슈크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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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체스터에 위치한 QVC 본사. (AP/연합뉴스)
한때 미국에선 TV만 틀어도 자연스럽게 물건이 팔리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상징 같은 존재가 바로 QVC이죠. QVC는 쇼호스트가 방송에서 제품을 설명하면 전화나 인터넷으로 바로 구매하는 홈쇼핑 채널로, TV판 라이브커머스의 원조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현재 QVC의 모회사인 QVC 그룹은 미국 연방 파산법(챕터11)에 따른 파산 보호 신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QVC 그룹은 채권단과 구조조정 합의에 도달한 뒤 텍사스 남부 연방 파산법원에 챕터11을 신청할 계획이며, 회사가 최근 제출한 연차보고서에도 관련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사안은 단순히 한 기업의 부진으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TV홈쇼핑이 지배하던 쇼핑의 시대가 저물고, 틱톡·인스타그램·유튜브·테무 같은 플랫폼이 소비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흐름이 더욱 선명해졌다는 신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TV의 시대’는 끝났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체스터에 위치한 QVC 본사 외부 간판 모습. (AP/연합뉴스)
QVC는 1986년 설립된 뒤 TV 편성표와 쇼호스트 중심의 판매 방식으로 성장해왔습니다. 문제는 그 기반이 된 시청 습관과 고객층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AP통신에 따르면, 로런스 듀크 드렉셀대 교수는 “QVC가 오랫동안 50대 이상 여성 중심의 충성 고객층에 기대 성장했지만, 이 고객군이 고령화·축소되면서 기존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QVC의 경쟁 상대가 더는 다른 TV쇼핑 채널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시간을 점유하는 디지털 플랫폼 전체로 넓어졌다고 짚었죠.

실적도 이를 보여줍니다. QVC 그룹의 2024년 매출은 2020년 정점 대비 거의 30% 줄었습니다. 한때 주당 900달러를 넘었던 주가도 이번 주 초에는 3달러 이하로 거래됐죠. 결국 TV 편성에 기대 반복 구매를 끌어내던 모델이, 시청 습관 변화와 고정비 부담, 부채 문제를 동시에 견디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바뀐 건 ‘상품’ 아닌 ‘발견 방식’

▲TV 홈쇼핑에서 숏폼·라이브커머스로 이동한 소비 방식 변화. (사진=챗GPT AI 생성)
이번 QVC 사안을 이해하는 핵심은 ‘무엇을 파느냐’보다 ‘어떻게 발견되느냐’가 달라졌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 홈쇼핑은 정해진 시간표 안에서 쇼호스트가 상품을 설명하고, 소비자는 채널에 머물며 구매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쇼핑은 검색보다 추천에, 편성표보다 알고리즘에, 쇼호스트보다 인플루언서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물론, QVC 역시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 플랫폼까지 유통 채널을 넓혔습니다. 또한, 2025년 QVC 그룹의 실적 발표에 따르면 전체 매출의 약 63.4%가 온라인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럼에도 기존 방송 채널의 감소를 완전히 메우지 못한 거죠.

이 변화는 미국 디지털 상거래 시장에서도 확인됩니다. AP통신은 소비자들이 케이블TV를 떠나 틱톡샵 같은 라이브 플랫폼, 인스타그램·유튜브 인플루언서 커머스, 쉬인·테무 같은 저가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제 소비자는 물건을 일부러 ‘찾아서’ 사기보다, 피드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콘텐츠를 ‘보다가’ 사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TV 밖으로 옮겨간 소비의 무대

▲TV 홈쇼핑 방송사업매출 현황. (Gemini AI 기반 편집 이미지)
한국 역시 흐름은 비슷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24년 방송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홈쇼핑PP 매출은 2024년 3조4170억원으로, 전년 대비 2.2%(763억원) 감소했습니다. 이 가운데 TV홈쇼핑 매출은 2020년대 들어 지속 감소해 2024년 2조6425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국가데이터처가 2월 발표한 ‘2025년 12월 온라인쇼핑동향’을 보면 2025년 12월 온라인쇼핑 거래액(24조2904억원) 가운데 모바일쇼핑 거래액은 18조7991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6.2%(1조1002억원) 증가했습니다. 모바일 거래액 비중은 전년 동월과 동일한 77.4%로 나타났습니다. 소비의 주 무대가 이미 TV 앞 소파가 아니라 손안의 화면으로 옮겨갔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라이브커머스 성장까지 겹치고 있습니다. 1월 커머스분석업체 라방바 데이터랩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국내 라이브커머스 시장 규모가 4조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5% 성장했습니다. 절대 수치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방향입니다. 홈쇼핑의 경쟁 상대가 이제 다른 홈쇼핑사가 아니라 네이버, 유튜브, 인스타그램, 숏폼,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전체가 됐다는 점입니다.

결국 유통판의 승부는 ‘누가 더 싸게 파느냐’보다 ‘누가 더 오래, 더 자주, 더 재미있게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느냐’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QVC의 파산 준비가 던지는 질문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홈쇼핑의 위기는 채널의 위기일까요, 아니면 소비자의 발견 방식이 완전히 바뀐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모델의 위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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