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1941년 12월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하며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다가오는 그 전쟁의 그림자에 갇힌 사춘기 젊은이들의 우정과 사랑과 두려움을 담았다. 이 영화는 1937년에 발간된 단 가즈오의 동명 소설에 바탕을 두었다. 미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중국과의 전쟁이 배경이지만 주제는 같다. 오바야시 감독은 어릴 때 이 소설을 읽었는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1938년생이므로 소설 속 젊은이들과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다. 그러나 자신도 전쟁통에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직접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감독은 이 영화를 데뷔작으로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여건이 맞지 않았던 듯하다. 실제 첫 영화는 ‘하우스’(1977)라는 코믹 공포영화였는데 그 파격적인 영상이 전 세계 영화 애호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후 ‘시간을 달리는 소녀’(1983), ‘전학생’(2007) 등 많은 영화를 만들었으나 ‘하나가타미’는 결국 그의 마지막 영화가 되었다.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암 선고를 받았었다는데, 그는 이 영화가 첫 작품이 아니라면 마지막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17세의 남학생 도시히코는 부모가 있는 암스테르담에서 일본의 한 바닷가 도시로 막 전학을 왔다. 부유한 이모 게이코의 집에 거처한다. 그는 반에서 친구들을 사귄다. 기라는 수도승 같다. 헤진 망토 같은 걸 걸치고 나뭇가지로 만든 지팡이를 짚는다. 한쪽 다리가 불구다. 우카이는 미남이고 군인에 어울리는 몸을 가졌다. 한밤에 옷 벗고 수영하는 걸 즐긴다. 아소는 학급의 어릿광대다.(배우들의 나이가 많다. 도시히코 역은 당시 30대 중반이었고 기라는 40이 넘었다. 연극이라면 딱히 이상하지 않지만, 영화에선 드물다. 이 영화는 ‘하우스’처럼 전체적으로 매우 실험적이다.)
게이코는 결핵에 걸린 시누이 미나를 정성껏 돌보고 있다. 미나는 만주에서 죽은 남편의 여동생이다. 그 남편도 동생처럼 폐가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참전했다. 게이코는 미나를 그와의 유일한 연결 고리로 여긴다.
도시히코는 미나에게 연정을 느껴 둘이 달빛 아래 바닷가 언덕에 산책 나갔을 때 키스하려 한다. 그러나 미나는 끌리는 듯하지만 거부한다. 시한부 인생이니 사랑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물들 사이의 로맨틱한 관계는 그러나 간단하지 않다. 미나는 우카이의 외모에 끌린다. 뒤에 우카이가 미나를 안는 장면도 나온다. 게이코도 그에게 끌린다. 한편 기라는 어릴 때부터 친했던 사촌 치토세와 이성 관계로 발전한다. 치토세의 적어도 명목상 남자친구는 그러나 우카이다. 두부 요리가 맛있는 식당 집 딸 아키네는 도시히코를 좋아한다. 웃으며 “우리 불량 학생들이잖아”, 부추기지만 도시히코는 소극적이다.
그러나 삼각관계가 이 영화의 포인트는 아니다. 이 영화에 단 가즈오의 시 하나가 여러 번 나온다(소설에서도 서두에 제시된다). ‘스쳐 지나는 / 환상의 / 꽃의 향연 / 괴로우면서도 / 귀하다.’
하나가타미는 꽃바구니라는 뜻인데 이 시의 ‘꽃의 향연’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바구니의 꽃들은 아름답지만 꺾은 것이라서 금방 시든다. 이처럼 그들의 젊음도 파멸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괴롭지만, 짧은 만큼 귀하고 아름답다.
여기서 우리는 T.S.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유명한 시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엘리엇은 전쟁의 기억과 생명이 넘치는 봄을 대비시킨 것이지만, 전쟁을 앞둔 젊은이들에게도 봄은 마찬가지로 잔인할 수 있다.
주요 인물 중 사랑을 불태우지 못한 도시히코와 아키네만 살아남는다. 진주만 공습이 있던 날 미나는 쓰러진다. 삶의 의미가 없어진 게이코는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빨간 드레스를 입고 우카이와 춤을 춘 후, 밤에 그와 함께 바다를 헤엄쳐 나간다. 기라는 “믿기 힘들겠지만 난 수영을 못해”라는 말을 남기고 바다로 뛰어든다. 치토세는 모호하지만 피 흘리며 누워있는 모습이 잠깐 나온다.
70여 년이 지났다. 도시히코는 허리가 굽고 지팡이를 짚었다. 그는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다. 그는 바닷가 언덕에 자리한 미나의 무덤에 가면서 그녀가 마지막 남긴 쪽지를 회상한다. “내 무덤에 올 거면 달빛 밝은 날에 와요. 자주 올 필요는 없지만, 혼자 온다고 약속해요. 안녕.” 그는 비석을 붙잡고 오열한다.




